어제 아침은 서울 버스가 일제히 파업이었다. 거의 모든 버스가 교통앱에 도착시간도 뜨지 않으니 아침 출근길은 당연히 대혼란,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저 버스는 공공기관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파업 자체를 혐오하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혼란시에 시민들의 노조와 파업에 대한 염증과 혐오감은 한국의 거의 공통정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물리적 폭력을 쓰고 불법적인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정당한 합법 파업을 하는 중이라도 대부분 파업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파업 자체를 불법시한다. 어쩌면 노조와 노동 자체에 대한 멸시가 깔려있는 듯한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나는 다들 자기도 노동자일 텐데 왜 그러는 걸까 인간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7차례의 교섭과 마지막 16시간의 마라톤 협상 회의에서조차 단 한 번도 임금인상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측. 버스 원청인 서울시는 그동안 단 1초도 교섭장소에 나타나지조차 않았으며 사측은 심지어 돈 몇만 원에 벌벌떠는 너희들이 무슨 파업을 하겠냐고 조롱과 경멸을 던진다. 사측 저들도 분명 나와 같은 인간일 텐데... 더욱 인간이 미워진다. 일반화의 오류니 뭐니 다 쓸데없다.
결국 헌법의 기본권중 하나인 합법 파업이 정말로 일어났고, 출근길에 시민 불편으로 난리가 나자 그제야 사측은 부리나케 진짜로 협상에 들어갔는지 오후 3시경 협상이 타결되고 퇴근길에 버스 정상운행한다고 속보가 쏟아져나왔다.그런 와중에 나는 드라마로도 제작된 네이버 웹툰 송곳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왜 사측은 노동자들을 우습게 보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니들이 파업을 할 테면 해보라고 막말을 하는가? 아마도 가장 확실한 답은 저 송곳의 노무사 고구신이 말하듯이 '두렵지 않으니까'
서울에서 어느새 20년째 살고 있지만 서울 시내버스 파업이란 극히 드문 일이다 과연 이전에 있긴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그러니 사측에서 너희들이 파업같이 리스크 큰 단체행동을 진짜로 할 수나 있겠냐 헛소리하지 말고 올해도 임금동결이나 받아들여라 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측은 너무나 무례했기에 모멸감을 느낀 버스기사들은 오기로라도 파업을 진짜로 해야겠다고 단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한 사측은 총선이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고 현재 원청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서울시장 오세훈이 정부 여당 쪽 인물이라는 정황을 그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여러 정치현안과 의사파업으로 지금 여당 쪽 민심이 좋지 않은데 버스까지 파업해버리면 총선이 코앞인 서울지역 후보자들은 원청인 서울시장에게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으니까. 확실한 정보는 없지만 이러한 정황상 원청인 서울시 쪽에서 무조건 오늘 내로 원하는 대로 협상해 주고 파업 바로 종료시키라고 사측에 압박을 넣은 게 아닐까. 24시간도 안되어 이렇게 빠르게 협상완료된 파업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인과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닐까.
아마 원청인 서울시에서도 사측에 두려움을 강하게 압박 넣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내로 협상 완료하고 저녁에 버스운행 재개하지 않으면 하청계약 바로 끝내버리고 내년에 다른 버스업체로 갈아치워 버리겠다는 그런 두려움과 압박을 활용한 게 아니었을까.
인권이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가치는 21세기 와서 매우 중요해졌고 나도 그걸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이전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이고 전통적인 힘의 논리, 권력으로 공동체에 의지를 관철시키고 자원을 분배한다는 오래된 정치의 개념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어제의 출근길 버스파업이라는 소동이 빠르게 종결된 것은 바로 그런 현실의 거울이 여전히 우리를 비추고 있으며, 4.10 총선이라는 정황 덕분에 효과적으로 성공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