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처음이라... 이번 생은 처음이라... 같은 세상 모든 일이 처음이라 익숙치 않고 힘든 게 많다며 위로와 공감을 요구하는 예능이 넘쳐난다. 그와 반대로 '어른'이나 '어르신'같은 말은 무슨 유니콘처럼 환상 속의 동물처럼 여겨지며 일상에서 굳이 잘 쓰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환상 속의 어른은 미생 만화의 오상식 팀장 정도일까
다들 피로에 쩔어있는 직장인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붉게 충혈된 눈으로 등장하는 오상식 과장.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영업3팀의 팀장으로서 주인공 장그래에게 인생 선배로서 다소 진중하고 모범적인 캐릭터로 출연한다. 작중에서 일찍 아버지를 보낸 장그래에게 사실상 아버지의 역할도 맡으며 때론 들뜬 장그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하고, 장그래의 잘못이 아닌데 장그래의 실수인양 욕을 먹는 일이 발생하니까 술 한잔 하고서 우리 애만 욕먹었잖아 라고 울부짖으며 팀원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오 팀장...
많은 사람들이 미생 시즌1에서 오 팀장이 장그래를 잘 돌봐주는 그런 어른스러운 모습에서 자기도 저런 인생의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소망을 투영하는 듯하다. 물론 나도 시즌1 오팀장의 그런 온화한 모습을 좋아하고 원하지만, 또한 시즌 2에서 오팀장이 새로 차린 온길 인터 안에서 자기 상사의 잘못과 나태함을 찾아내는 당당하고도 멋진 직장인의 모습에서 또 다른 매력을 본다
미생마는 동행하라.
아직 집 하나가 되지 못한 바둑
아직 살아있지 못한 생과 함께해 주기...
오 팀장이 이렇게 미생마와 동행하라는 명언을 그 수많은 바둑의 명언 중에서도 첫째로 꼽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아마 미생 시즌2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었던 에피소드인 오상식의 상사가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을 지키다가 눈이 빨개지는 에피소드 때문이 아닐까...
돈 때문에 일해야 한다는 진실이 수용하기 버겁기에 일에 나 자체를 얹게 되는 직장인. 조금씩 늘어나는 급여 액수와 조금씩 커지는 집 평수로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 같지만 진실은 그저 노동자는 노동에서 소외되어 있고 노동의 주인이 아니라는 담백한 진실... 내가 하는 그 일은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며 내가 없어지면 쉽게 대체된다는 슬픈 진실... 그렇기에 오 팀장은 자기 부하든 상사든 사실 모두 다 바둑판의 미생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홀로 버텨내기 힘들기에 옆에서 같이 걸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글로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내가 바로 내 삶의 주인이다 외치는 것은 종종 쉽게 공허해진다. 그렇지만 이 소외되기 쉬운 삶이라도 누군가가 함께 걸어준다면, 단 하루라도 누가 내 옆에 있어준다면 그 삶은 공허하거나 무의미 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오 팀장처럼 멋진 어른은 되지 못할지라도, 오 팀장처럼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