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l 06. 2019

물총 없는 물총축제 즐기기-축제적 폭력의 가능성

어린아이처럼 춤추고 열광하고 싶은 오늘!

누구나 어릴적에 물총싸움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 복잡한 고민없이 쏘고 맞는 것에만 열중하다 보면 그때만큼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찾기란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서든어택이나 오버워치같은 총게임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허나 점점 나이를 더 먹고 피지컬도 뇌지컬도 떨어지면 예전같이 총을 맞추지 못하는 자신에게 게임에서조차 실망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다같이 평등하게 총을 쏘며 놀 수 있는 날이 서울 신촌에서 일년에 딱 이틀이 있는데, 바로 오늘과 내일이다. 긴 말이 필요하겠는가. 맨몸으로 혼자라도 당장 가야한다!



신촌역에서 연세로 쪽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다들 평소에는 체면때문에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못하는 물총놀이를 하려고 역에서 내리면서부터 이미 신나있는 얼굴이었다. 약간 오바해서 무리수를 두자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설파한 정신이 성숙하여 자기의 가치를 창조해내는 어린아이의 형상은 바로 오늘의 신촌 물총축제의 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오늘 연세로에는 친구끼리 가족끼리 연인끼리 사이좋게 온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중2병 마인드가 필요하다. 나는야 무적의 솔로부대. 캡틴 아메리카의 정신을 이어받은 One Man Army 가 바로 홍대동 조커다. 그러나 물총도 없이 물총축제와 와서 뭘 어떻게 싸우고 놀 거냐고 궁금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전쟁이 뭔지 잘 모르는, 삼국지조차 안 읽은 전알못에 불과하다.


이학인과 킹곤타의 삼국지기반 만화 창천항로에서 조조의 군사 곽가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에 필요한 군량이 없다고? 군량은 적에게 뺏는다! 이게 바로 전쟁이라는 것이다. 난세같은 상황에서 기존의 상식을 답습해서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전쟁아닌 물총 축제라는 일종의 가상 모의 전쟁에서 진짜로 남의 물총을 폭력으로 강탈해서는 축제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한번 쓰고 버려지는 남의 물총을 주워서 내 무기와 군량으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완전히 고장나서 버려진 것도 있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물총도 물총축제라는 현장에서는 종종 버려진다. 애가 아니고서는 자기 집에 물총을 보관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니까. 게다가 물총뿐만 아니라 축제이기 때문에 무료로 나눠주는 것들이 여러가지 있다. 무기 방어구 비상식량. 전투에 필요한 것들을 어느새 나는 다 모아버렸다.


나눠주는 부채로 눈같은 급소부위를 막아내고 주워든 물총으로 적들에게 대항하며 집중포화가 나에게 쏟아질때는 안전한 양지로 대피해서 무료로 받은 음료수로 체력을 보충한다. 실로 이보다 축제를 가성비좋게 효율적으로 즐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일단 투자하는 비용이 사실상 0 제로니까. 물론 신촌 물총축제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입장권이라기보다는 탈의실과 라커룸 물총장비 대여료라고 봐야한다. 그냥 자기 몸만 와도 사실은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수 있는 축제인 것이다.


연세로 중앙에선 DJ들이 계속 노래를 선곡하면서 마치 락페스티벌같이 모두 뛰면서 노는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실은 물총은 축제의 도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바랬던 것은 35도라는 자신의 체온과 비슷한 폭염속에서 정신없이 뛰어노는 이 현재의 순간 자체가 아닐까.


슈퍼마리오의 마리오와 루이지를 떠올리게 하는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오신 분도 있었고, 훅 지나가서 찍지는 못했지만 마블의 데드풀 코스튬을 제대로 입고 오신 유투버 분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등 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신촌의 일상에 축제라는 균열을 내며 이래저래 정신없이 엔돌핀이 쏟아지는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의 축제 속에서 한번 반대편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 볼만도 하다. 물총축제는 아무 관심없이 지나가던 사람에겐 괜히 옷이 젖어버리는 불쾌한 경험일 수 있다고. 심지어 신촌 지역 상인들에게는 사실상 영업방해를 일으키는 폭력일 수도 있다는 소리들.


 철학을 공부한 못된 버릇대로 조금 진지해져 보자면, 리는 흔히 폭력을 나쁜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방법을 훈육받아왔다. 그리하여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육체적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말도 폭력일 수 있다든, 언어 폭력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축제를 폭력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은 아닐까? 우리는 이런 새로운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맞는걸까. 그나마 이런 물총축제에 대해서는 여론이 나은 편이나, 퀴어 축제 퍼레이드 같은 경우에는 적지않은 시민들이 축제 개최 자체에 대해서 굉장한 반감을 넘어 혐오표현을 쏟아낸다. 년에 단 한번 서울광장에서 자기들끼리 모였을 뿐이지만 그 자체가 마치 부당한 폭력이니까 자기들의 혐오 정당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론 물총축제든 퀴어축제이든 분명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요소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을 다 묶어서 같은 폭력이라 해서는 어떤 논의도 불가능한, 단지 냉소주의나 반지성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나는 우려한다. 신체적 폭력과 언어 폭력이 서로 다른 개념으로 다르게 다루어야 하듯이, 이런 축제같은 행사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불편과 폭력을 '축제적 폭력' 이라고 따로 이름짓고, 이 불편과 폭력을 어떻게 관리 또는 활용할지 그것이 지금 인문학자들과 인문학 독자들이 고민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아닐까? 조금 더 과감하게 덧붙이면, 우리는 마치 폭력을 그 자체로 혐오스러운 스트레스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은 스트레스도 적당한 수준에서는 삶의 긴장과 성취감을 주는 필수요소라고 의학에서 밝혔듯이, 폭력 또한 단순히 줄이기만 하는 것이 선이 아니라 건강한 폭력 즐거운 폭력이 가능한지 축제적 폭력이 바로 그러한 폭력이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이는 또 추후에 긴 글로 재논의가 필요한 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제 일년에 하루밖에 안 남은, 기쁨의 정서가 서로 전염되는 축제의 현장을 내일도 생생하게 느끼며 노래와 함께 춤을 추러 가야할 시간이다.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도 태양이 쨍쨍할 내일 신촌에서 맨몸이든 물총을 들고 있든 얼굴을 아는 친구이든 아니든 우연히 마주치기를 기원한다. 른 복잡한 이야기들 다 제쳐두더라도, 더운 여름에 속이 시원하니까. 재밌으니까. 내일 신촌에서 이 즐거움을 여러분들도 함께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인문학 두쪽읽기 니체10-촛불. 이스크라. 새로운 우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