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마 히로키 아재의 신작을 만화와 음미하기
흰 여백의 동그라미에 빠져든다..
정정하는 힘. 마치 백지에 동그라미를 여러 번 더 둥글게 그려보려는 듯한 단촐한 표지와 제목이 눈을 끌어당긴다. 운 좋게도 고진 할배의 트랜스크리틱을 다시 읽고 반납한 후 뭘 볼까 하다가 타인이 반납한 서가에서 바로 집어들었다. 마치 판타지 모험 게임에서 득템, 횡재한 듯한 기분
아즈마 히로키는 그의 첫 저서이자 박사논문인 존재론적 우편적부터 주목받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책부터는 일약 출판계의 스타가 된 일본의 대표적인 비평가이자 철학자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철학자인 가라타니 고진과 약 20년 정도 나이차이로 딱 한세대 정도의 차이.
그 고진 할배가 주재한 비평지에서 등단하여 와세다 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이를 그만두고 출판사 겐론을 운영했으나 스스로 대표직을 사임하고 지금은 편집장으로 일하는 특이한 이력의 아저씨다. 한국인들도 다들 아는 와세다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출판사 편집장이라니 출세지향적 소용돌이 사회라고까지 명명되는 한국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별난 인생을 걷는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을 오래 읽다보니 친숙해져서 고진 할배라고 부르게 되듯이 아즈마 히로키도 어느새 20년째 보고 있으니 아즈마 아재라고 좀 편하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책을 슥슥 한번 편하게 다 읽어보니 왠지 아즈마 아재도 바다너머 한국의 독자가 자길 그렇게 불러주길, 교환 불가능,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주길 소망할 듯하다. 그리고 내가 요새 즐기는 웹툰 중에도 이런 대체 불가능한 만화가 있으니 바로 네이버 웹툰의 화산귀환.
우연찮게도 이 아즈마의 정정하는 힘 책을 읽는 와중에 쉬는 틈틈이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을 정주행하다가... 정정하는 힘과 화산귀환이 철학 책과 무협 웹툰이라는 적지 않은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방식과 주제의식이 적지않은 유사점이 있지 않나 하면서 둘을 교차적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네이버 웹툰 화산귀환은 인기 웹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마교의 절대고수 천마와 대결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화산파의 매화검존 청명이 백년뒤의 세상으로 환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30화까지 본 짧은 감상으로는 한 십여 년 전부터 서브컬처물의 주류가 된 과거회귀물, 환생물을 무협이라는 장르로 잘 섞은 중화풍 비빔밥 중에서도 명품이 아닐까.
그치만 회귀 환생물이라 해서 주인공 청명이 단순히 인생을 리셋하고 처음부터 모든 무력과 지식을 가지고 시작하는 그런 단순한 먼치킨 대리만족물의 환생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은 자기가 어려서부터 제대로 검의 기본을 수련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저 천마에게 화산파 전체가 전멸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하며 백 년 뒤 멸문 직전의 화산파를 하나 하나 개선해 나간다. 이는 서문에서부터 아즈마 아재가 말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즈마는 매력적인 나라 일본에 과거를 재해석하고 유연하게 꾸준히 바꾸어가는 정정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는 화산귀환에서 환생한 주인공 청명이 망하기 직전의 화산파를 재물 사람 문화 등등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과 매우 겹쳐져 보인다.
고진 할배식으로 말하면 아즈마에게서 화산귀환을 읽어내고 화산귀환에서 아즈마를 읽어내는, 이 또한 유식하게 멋부리면 하나의 트랜스크리틱이 될지도. 뭐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하진 않더라도 비평가의 책에서 배운 바를 다른 창작물에 바로 활용해 본다면 그게 바로 좋은 책이자 비평의 본령이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