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과 정정하는 힘 같이읽기 3
전생에 매화 검존이라 불리며 천하제일검으로서 마교의 교주 천마를 벤 청명. 자기가 부족해서 화산파가 전멸했다는 현실에 후회하며 천마와 공멸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백 년뒤 세상에 거지로 환생하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차라리 부정하고픈 진실을 듣게 된다.
그건 바로 무당 소림 개방 등등 무협이란 장르 소설에서 필수적인 정파 9파1방에 몰락한 화산이 빠지고 변방의 해남이 들어갔다는, 도대체가 믿기지가 않는 백 년뒤의 현실...
수천명의 제자와 수백명의 고수가 모여 정파중에 천하제일을 다투던 화산파. 그러나 백년 뒤 청명이가 직접 찾아간 화산의 현실은 대문의 현판부터 뜯어져있고, 수련장과 전각들을 팔아넘겼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화산의 상징인 신물 암향백매화마저 팔아넘긴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는 지금 집안이 어렵고 가난해졌다고 해서 증조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백년 전 독립운동시절 사진과 족보를 팔아치운 것이나 마찬가지. 매화 검존이던 청명이 극대노하면서 이런 미친 후손들이 무슨 화산을 사칭하고 있냐 다 부숴버리고 내가 처음부터 새로 만들겠다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닐 듯한 상황이다. 어쩌면 환생한 청명이가 아닌 전생의 매화검존이었다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하지만 청명은 이 형편없는 현실에도 절망하거나 극단적인 리셋을 결단하는 게 아니라 지금 주어진 현실에서 무엇을 개선해나갈지 하나씩 고민한다. 재물도 무학도 인재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지금 즉시 바꿀 수 있는건 역시 자기와 같은 처지인 화산의 삼대 제자들. 이 조그만 아직 피지못한 매화들을 청명이는 엄격하지만 소중하게 키워보리라 다짐하고 자기 자신부터 매일 새벽에 기초 체력수련부터 함께 시작한다
이러한 화산귀환 청명이의 망했어도 리셋이 아니라 하나씩 개선이라는 결단, 지속적인 실행력은 아즈마 아재의 정정하는 힘과도 호흡을 같이한다.
마치 화산과 일본의 현실이 겹쳐지는 듯
일본은 분명 매력적인 나라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서브컬처의 소프트 파워를 자랑하고 수천만명이 관광을 오는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또한 잃어버린 20년 아니 이젠 30년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경제 침체와 자민당이 장기 집권중인 정치 정체현상 또한 현실이다. 언론과 시민들이 대담한 개혁이 필요하다 외치지만 도무지 바뀌는 게 없는 현실에 이젠 아예 일본 자체를 리셋하자는 말이 나온다. 마치 과거 메이지 유신과 일본 패전이 그랬듯이.
1868년의 메이지유신과 1945년의 일본 패전에서 일본이 새로 태어났다는 역사적 평가들. 그리고 최근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을 새로운 일본으로 리셋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담론들. 하지만 아즈마 아재는 그런 단순하고 쉬운 리셋 욕망에 반대한다. 애초에 나라의 성장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으며, 어느정도 풍요로워진 후에는 풍요를 잘 유지하고 나이 든다는 걸 긍정하며 어떻게 성숙해질지 고민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즈마의 주장이다. 분명 일본의 이야기지만 그냥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가 않는다. 화산이든 대한민국이든.
일본이 세계적으로 특장점을 가진 서브컬처 분야에서도 주인공은 모두 10대 20대의 젊은이다. 이런저런 실패와 좌절을 겪고 고뇌하는 중년이나 노년을 주인공으로 삼는 인기 만화는 고심해봐도 도저히 나오지를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늙는다. 부정해도 소용없으니 이를 긍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언어를 가져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나이를 든다는 건 바로 젊을 때의 과오를 정정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러한 변화=정정을 싫어하는 문화가 있어서 정치인은 사과하지 않고 관료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이 또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게 들린다.
리셋하고픈 욕망은 단순하고 쉽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이고 허망한 욕망이다. 그런 쉬운 해결을 뿌리치고 하나씩 개선해보자는, 멀리 돌아가는 듯한 천천히 가는 이 정정의 길은 미친듯이 효율을 강조하는 시대에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80세까지 제자 한명도 두지 않고 홀로 천하제일검의 경지에 올랐지만 죽음 직전에 후회한 청명이. 그가 후회하고 환생한 백년뒤에 삼대제자들과 같이 기초체력 수련하는 것부터 시작하듯이, 진정 높은 탑을 쌓으려면 기초 공사부터 튼튼히 하는게 너무나 당연한 순리가 아닐까.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일본과 한국 사회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