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과 정정하는 힘 같이 읽기 4
망한 화산을 바꾸기 위해 가장 기초 중의 기초부터
새벽, 삼대 제자들의 기초 체력수련이 시작된다
청명이도 같이 새벽부터 남들보다도 더 가혹하게
점심에 젓가락 잡을 기력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가혹한 수련에 화산의 삼대제자들은 당연히 불만이 폭주하지만, 매일 청명이가 남들의 배나 되는 수련을 소화하는 걸 보며 누구도 함부로 힘들다고 표출하지 못한다. 이러한 기초 수련의 나날들이 매일매일 쌓여서 한 달 두달을 넘은 뒤부터는, 청명을 비롯한 삼대 제자들은 모두 비약적인 체력과 내공 상승을 겪고 라이벌 문파인 종남파와의 비무대회인 화종지회에서도 삼대제자들이 10대 0으로 승리한다. 이런 놀라운 결과를 내버리니 사실상 화산파 전체가 수련을 지도한 청명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존경하게 된다.
물론 단지 인재들의 기초 수련만으로는 화산 전체가 나아지기에 부족하다. 재물 무학 인재라는 무협 문파의 3대 요소중에 파산 위기에 처한 화산의 재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명은 강도처럼 분장해서 화산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는 상인들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에 사형을 비롯한 동문들은 그런 음험한 짓은 명문으로 다시 도약하려는 화산같은 전통깊은 정파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고 말리지만, 청명은 코웃음 치며 그저 한마디로 답한다.
살불살조.
진정한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한다. 언뜻 듣기에 대단히 모순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모순을 극복하는 이전에 없던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살아남는 진정한 사상이 아닐까. 아즈마 히로키도 정정하는 힘에서 무언가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저 과거를 보존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계속 현실에 맞게 대응하며 정정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흔들리지 않는 것에만 고집하면 언젠가 무너지고 만다. 이는 다름아니라 아즈마 히로키 자신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학교 교수였으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아카데미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자 교수직에 집착하지 않고 그만두었고, 겐론 카페의 대표로 새 시작했지만 자기에겐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선 미련없이 대표를 물러나고 겐론의 편집장으로서 활동하며 어느새 50을 넘은 아즈마 아재 자신의 이야기.
허나 일본 공산당같은 좌파에겐 이런 피드백이 없다.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지지를 받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일본 공산당은 당원 숫자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는 게 객관적 진실이다. 물론 자민당같은 일본 보수 우파들도 쿨 재팬이니 뭐니 개혁을 말하지만 집권 수십년째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건 두말하면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이런 일본의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를 고집하는 좌파 우파 이야기 또한 그저 옆집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 예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도 사실 계속 바뀌어왔다. 지금 21세기 일본의 이미지는 모에나 귀여운 만화 캐릭터의 서브컬처로 가장 유명하지만, 아즈마가 어렸던 반세기 전 학생시절에는 미소녀 그림을 거리에서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과장되고 귀여운 캐릭터 그림들이야말로 수백 년 전 17세기 에도 시대에 대량생산되어 세계로 전파된 우키요에부터 이어진 일본의 만화적 전통의 계승자로 보인다.
전통을 계승할 때 바로 이런 정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며 아는 과거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는 능력과도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게임과 애니메이선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과거의 일본 문화를 재발견했다. 닌자나 사무라이같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전통문화는 2차 대전 패전 이후 잊혀졌지만 70년대 이후 데즈카 오사무의 아톰이나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같은 만화를 비롯한 서브컬처의 부흥을 통해 재발견된 것이다.
물론 만화 나루토의 초능력 군인에 가까운 닌자나 베가본드에 나오는 무사 라기보다는 농부이자 철학자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가 과거 역사에 실존한 닌자나 사무라이와 같을 리는 없다. 허나 바로 이런 재해석과 정정을 통해서만 과거의 전통은 계속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계승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무슨 원조 족발집이나 원조 짜장면 논쟁처럼 그저 간판경쟁에 휘말리는 사회적 자원 낭비에 불과하며 전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50년 전의 짜장면과 족발을 그대로 맛있게 먹은 사람이 과연 50년동안 그 취향을 계속 간직하고 있을까.
또한 이런 기억하는 힘은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라고 불리는 21세기의 큰 사상적 조류와도 연결지어 생각해 볼 만하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는 최근의 이 PC에 대한 염증, 거부감은 왜 세계적으로 두드러지며 전체주의 파시즘에 가까운 트럼피즘을 비롯한 위험한 대안 우파세력은 왜 급증하는가?
이는 어쩌면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하며 잘못된 과거를 재해석할 권리를 마치 자신들이 독점한다는 듯이 오만하게 굴면서 또 다른 과거의 오점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아즈마 아재의 말처럼 현재의 가치관을 절대시하며 과거의 발언이나 복잡한 맥락 속 행위를 단순화하고 쉽게 재단하는 행위는 자신들이 그렇게 외치던 정치적 올바름을 스스로 어기는 것은 아닌가? 또 반대로 지금 올바르지 않았던 것이 미래에 올바르게 재평가받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우리는 사회적으로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의를 내세우며 큰 소동을 내고서 그저 잊어버리는 것은, 정정하고 기억하는 힘과는 분명 반대일 것이다. 이런 아즈마 아재의 지속적으로 과거를 기억하자는 소란스러운 제안들은 화산의 청명이든 한국의 우리든 마찬가지로 새겨보고 곱씹어볼 말들로 가득하다.
이렇게 환생해서 화산 전체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청명이는 전생에도 좋은 제자를 길러냈을까? 안타깝게도 화산의 매화검존이자 천하제일검이던 전생의 청명은 제자를 단 한 명도 키우지 못했다. 이는 명백히 매화검존 자신의 책임이다. 전생의 그는 흔한 오만한 무인처럼 그저 홀로 강해지고 자신의 무공을 천하에 과시하고 싶었기에, 제자 따위는 시간낭비 거나 맘대로 때려서 멋대로 부릴 수 있는 노예 정도로만 생각했으니 이런 그에게 제대로 제자가 생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백 년 뒤 화산엔 천하제일검이던 자신의 무공을 전수한 제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역으로 그런 제자 한 명 없는 씁쓸한 과거가 있었기에 환생한 청명은 단순히 자신만 이전보다 천마보다도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화산 전체를 천하제일 문파로 부강하게 만들겠다고 새 목표를 세운다. 이는 청명이 그 누구보다도 과거에 천마에게 전멸한 화산파의 쓰라린 기억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게 아니라 직시하고 제대로 기억하기 때문에 가능한 미래였다. 아무리 강하고 대단할지라도 혼자서는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
이는 또한 아즈마가 정정하는 힘을 민주주의의 힘과 같다고 말하는 것과도 이어진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모두가 규칙을 만든다는 것이며 올바름도 모두가 정한다. 그렇다면 무슨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 정치처럼 가장 뛰어난 한 명에게 정치 권력을 몰아주는 방식은 애초에 성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 대표 한 명 잘 뽑는다고 해서 사회가 저절로 좋아진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
완벽한 법이나 완벽한 사회나 완벽한 시민은 없다. 오히려 이런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반칙이나 불법이 반드시 나온다고 봐야만 한다. 이렇게 규칙을 어기거나 악용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에서 민주주의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를 바로잡는 것 또한 국가의 주인인 시민들이 한 명 한 명 정정하는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화산파 전체가 전멸하는 씁쓸한 과거나, 나라 전체가 일본 제국에 굴복하고 식민지의 2등 시민으로 굴종했던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반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계속...
다음이 아마 화산귀환과 정정하는 힘의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