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아니라 개화하기. 생이 흐르고 피어나듯이

화산귀환과 정정하는 힘 같이 읽기 5. 마지막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매화가 아닌 개화, 피어나고 흐르는 것이 생


이제 화산귀환과 정정하는 힘과도 마지막 시간.


하루종일 담배 뻑뻑피는 아저씨들이 만화방 구석에서 읽는 소설책. 딱 20년전쯤 무협 장르의 이미지란 그러했다. 김용의 영웅문같은 전설의 작품들이 8090년대를 휩쓴 뒤 그 성공을 따라한 비슷비슷한 양산형 무협소설들은 21세기 새로운 독자들에게 외면당한 듯했다. 마치 화산귀환의 화산파가 천마에게 전멸한 뒤 재산도 무학도 인재도 없이 망했듯이, 무협 장르도 그렇게 한때 흥했지만 이젠 시대의 저편으로 저물어서 보는 사람만 보는 그런 장르소설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억 뷰를 넘는 웹소설 기반의 화산귀환 웹툰은 그런 한국 무협의 과거와는 분명 달라졌다.


화산의 라이벌 종남이 비웃듯이 화산은 백년 전 매화검존이 군림하던 찬란한 과거에 묶여서 그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망한 문파였다. 이에 반해 종남은 과거에 미련없이 새로운 무학을 계속 만들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진취적인 문파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전통과 과거를 버리고 더 새로운 것 새로운 무공을 계속 배운다고 더 강해질까 더 위대해질까? 심지어 원래 화산의 검이었던 매화검법 무공을 화산이 약해진 틈에 훔쳐서 원래부터 종남의 검인양 흉내내면서?




이에 매화검존이었다가 백년 후 환생한 청명은, 종남파 너희들은 그저 화려한 꽃같은 검법이라는 화산의 껍데기만 흉내냈을 뿐이라 일갈한다.


전생에 80년 넘게 화산에서 오직 화산의 검만을 수련하며 천하제일검이 된 청명의 깨달음. 천하의 문파들이 각자 이상화하려는 자연을 흉내내고 재현하려고 하지만, 화산의 검이 재현하려는 건


매화 꽃 자체가 아니라


매화를 피워낸다는 과정 자체다.




매화가 아니라 개화. 즉 피어남 자체가 화산파가 추구하고 재현하려는 이상적인 무공인 것이다. 종남은 그저 어설프게 매화같은 화려한 꽃 자체가 화산파의 정수라고 생각하고 흉내냈으나 그건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화려함의 극치인 이십사수 매화검법이 아니더라도 화산의 검이라면 수련끝에 반드시 자연스럽게 매화를 피워낼 수 있다는 진실을 종남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단 것이다.


이렇게 피어남, 생성 자체가 화산의 검이자 이어가야 할 전통이자 의지라는 가르침은 아즈마의 정정하는 힘에서도 일본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서도 반복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듯이 일본 문화엔 쉼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특성이 존재한다. 당장에 바로 생각나는 메이지 유신의 일본과 패전이후 경제대국으로 변신한 일본은 분명 굉장히 다른 나라다. 그리고 어쩌면 311 관동대지진 이후의 일본도 그렇게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달라지는 중일지도 모른다.



메이지 유신 당시의 사무라이들은 분명 처음에는 양이를 내세웠으나 어느새 개국으로 돌아섰다. 또한 2차 대전당시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며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싸웠지만 패전후 일본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미국의 동맹이 되었다.


이렇게 일본에는 주체성의 결여와 자연적인 생성 자체를 긍정하는 풍토가 있으며, 이는 하이데거같은 서양철학의 거인이 설파한 생기의 철학과 매우 비슷하다. 그렇기에 교토학파를 비롯한 일본의 철학자들은 하이데거를 매우 친숙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생성 그 자체를 일본의 전통으로 정정하면서 지속하고자 아즈마 히로키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한국 문화의 특성, 한국인의 전통을 찾을 때 끝없이 역동적인 민족, 다이내믹 코리아라 답하는 21세기 한국과도 겹쳐보이지 않는가.



판타 레이. 만물은 흐른다는 고대 그리스시절의 가르침은 서양 철학만의 전통은 아닐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정치학의 명언처럼, 계속해서 정정하며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재해석하는 일부 파워 엘리트가 아닌 민주주의의 힘. 이런 정정하는 힘이 지금 일본 사회에 필요하다고 아즈마 아재가 200페이지 내내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읽어낸 화산귀환에서도 어쩌면 그런 메시지가.


이는 물론 일본 사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 네이버 웹툰으로 중국 무협 화산 배경의 스토리텔링인 화산귀환을, 내란과 대선 국면이라는 역사적인 시간이 지나가는 중에 일본 아즈마 아재의 정치철학 책을 읽으면서 나름 행복한 6월의 첫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100화가 넘는 장기연재 네이버웹툰을 이렇게 잠도 줄여가며 정주행 한 기억, 한 철학자의 책을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코멘트를 달고 연관된 다른 철학책도 바로 빌리게 되는 추억도 참으로 오랜만인 듯하다. 내 모자란 5편의 글은 논리적 비약도 많고 억지로 끼워 맞춘 구석도 많지만 그럼에도 여러분이 화산귀환과 아즈마 히로키 아재를 접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보다 보람찬 일은 어렵고도 드물 듯하다.


다음은 아마도 아즈마의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인 관광객의 철학이 될지도... 아니면 아즈마를 처음으로 내게 알린 책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부터... 과거를 기억하고 재해석하며 정정하는 힘을 피워내 볼까나 일단 또 재밌는 만화부터 하나 찾고 정주행하면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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