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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향신료, 중세의 코인과 비트코인사는 철학자

스샷의 철학 철학의 스샷 5 아즈마의 느슨 철학 e


말할 필요도 없이 철학자도 돈이 필요하다


아즈마 아재같은 철학자도 비트코인을 산다면


흔한 우리들처럼 상승각이면 풀 매수를 지를까?



이젠 거의 주식 부동산만큼이나 사회인의 상식 수준이 되어버린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기술. 기존의 달러나 원화 같은 화폐들은 국가와 중앙은행이 그 신뢰를 보증하지만 비트코인은 바로 그 중앙은행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출발한다.


21세기에 미국이 하듯이 달러가 국제화폐라는 걸 믿고 중앙은행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 버리면 화폐의 가치가 폭락해 버릴 수 있지 않은가? 비트코인은 그 대신에 익명의 컴퓨터들이 계산한 결과물을 서로 검증해서 화폐의 신뢰를 보증한다. 국가같은 제3자의 검증이 필요없으니 중간과정의 거래비용도 없어지고, 국가에 대한 믿음같은 애매한 단어가 아닌 상호 계산 검증이라는 과학적인 최신 기술로 탄생한 화폐라니 이는 대단히 멋지고 매혹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아즈마 아재는 기본적으로 비평가이자 철학자. 철학과 사상은 헤겔이 말하듯 항상 그 시대의 아들이며 역사적 배경을 기본으로 하는데 버블은 반드시 터진다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이 아재가 놓칠 리는 없다. 그럼에도 아즈마는 왜 사람들이 다들 이렇게나 가상화폐에 푹 빠진 걸까?라는 관심으로 200만 엔, 원화로는 대략 2000만 원가량의 투자에 뛰어든다. 과연 철학자는 돈벌이에도 선견지명을 보여줄 수 있을까?



수영이나 달리기가 그렇듯이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투자도 바로 그렇다. 아즈마는 20만 엔으로 시작했는데 20만엔이 다 날려도 크게 아깝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긴장감이 생기는 금액이라니, 역시 아즈마 아재는 대학 교수였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지금은 출판사의 사장이니만큼 꽤 벌이가 나쁘지는 않을지도.


하지만 십 초마다 시세가 바뀌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순식간에 20만엔이 19만엔까지 폭락하는 걸 보면 아니 내 1만엔, 십만 원이 갑자기 사라진다니 글로만 봐도 정신이 나갈듯한 아찔한 체험이다. 게다가 저녁엔 문을 닫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24시간 점심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이 계속 돌아가는 코인시장은 그야말로 수많은 주변의 이야기처럼 자다가도 벌떡 시세를 확인하게 만든다. 심지어 주식처럼 기업의 제무재표를 본다느니 주변 업계 동향 뉴스를 본다느니 그런 정보도 딱히 없고 그저 수치가 움직일 뿐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있으면 계속할 수 있고 결과도 바로 나온다는 점에서 이것은 21세기의 컴퓨터 게임, 아니 스마트폰 전용으로 개발된 소셜 네트워크 게임들과 매우 흡사하다. 아예 게임의 관점으로 보아도 가상화폐 거래는 잘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아즈마는 인정한다. 중독성도 상당하기에 다들 이 소셜 게임에 전세계 수억 명이 주목하며 매시 매초마다 폰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즈마는 다행히도 20만 엔에 들어가서 사흘동안 폰에 달라붙어 있다가 20만 6000엔에 일상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투기적인 유희, 도박 게임의 매력은 다들 알다시피 수천 년 전부터, 마르크스 할배의 말을 빌리자면 대홍수 이전부터 오래되었다. 아마 수없이 사람들이 도박은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고 지금도 주식투자 회사들이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라고 안내해도 사람들은 또 도박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즈마 히로키, 대학 교수나 철학자같이 지성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투자를 빙자한 도박판에 끝도 없이 빠져들어 나오지를 못하는 걸까? 이에 대해 생각해보면 난 오래전에 본 만화지만 작년에 리메이크도 나온 애니메이션 늑대와 향신료의 황철석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독일로 보이는 장소와 풍경에서 중세에서 근대로 시장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의 유럽이 배경인 만화 늑대와 향신료. 어느 날 수천 년 살아와서 인간 말도 하는 현명한 늑대신 호로와 만나 같이 장사를 다니는 상인 로렌스는 황철석이 비싸게 매매되고 있는 마을에 들른다.



운명이 보이는 주사위라며 거창한 이름을 달고 팔리고 있지만 황철석은 원래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는 광석이다. 오죽하면 돌의 별명이 '바보의 금'이라고 불릴까. 주인공 로렌스는 상인으로서 이게 가치없다는 걸 바로 알아채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걸 선물로 비싸게 사고팔고 있다는 현실 자체에 주목한다. 마치 비트코인이 그 자체로는 신기술이니 뭐니 해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수천만 명이 거래중이라는 현실 자체가 중요하듯이.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황철석에 대해 마을의 점술가와 교회가 온갖 이야기를 부추겨서 계속 가격이 오른다. 사실상 저 중세시대의 교회는 국가의 공영방송이나 다름없는 언론 역할이고, 점술가는 곧 홍수가 난다 전쟁이 난다 등등의 이야기로 지역 여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sns 셀럽이나 연예인같은 힘을 가진 시대. 언론과 여론이 둘 다 들썩거리니 마치 네덜란드 튤립 투기 사태처럼 황철석에 매시간마다 폭등하고 로렌스는 상인으로써 이걸 무시할 수가 없다.



심지어 시세가 사람들의 여론에 쉽게 휩쓸린다는 걸 파악한 로렌스는 동네의 꼬마를 푼돈에 설득해서 이제 황철석이 폭락한다고 미리 부탁한 소문을 흘리기까지 한다. 더 이상 시장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이 미친 투기시장을 조종하고 통제해 보겠다고 사실상 자기의 전재산을 털어 넣는다. 마치 지금 주식이나 코인판에서 다들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인생 대박 가즈아 라고 외치며 온갖 인터넷에서 지금 탑승하라고 늦게 탑승하면 바보라고 외치는 커뮤의 망령들처럼.


수백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리고 아마 수백년 후에도 도박 자체의 매력 때문에라도 이런 투기상품 자체가 없어질리는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도박으로 패가망신하고 사람이 집단적으로 죽네 마네 하는 세계가 반복되는 건 그리고 사람들을 그렇게 방치하는 건 과연 좋은 사회일까 중세보다 진보했다 나아졌다 말할 수 있을까.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에 중독적으로 빠지는 건 왜 사회적으로 중독이라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도 않는 걸까. 오히려 카지노같은 도박의 순한 대체제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은 그 자체로 사회의 해악이고 마약 같은 중독 물질인양 몰아가는 걸까


아 그래서 로렌스는 과연 황철석 투기시장 통제에 성공해서 그냥 상인이 아니라 위대한 로렌스, 거상이 되냐고? 이건 스포일러이기도 하고 늑대와 향신료 애니 전체 에피소드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하이라이트 부분이라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고 감상하시길 권한다. 김 빠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늑대와 향신료는 시간을 들여서 감상할 가치가 충분한 재밌으면서도 경제 상식을 늘려주는 멋진 만화니까. 작년에 리메이크도 나왔으니 이전에 보신 분들도 새로운 작화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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