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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보다도 관객, 독자가 더 중요? 화산귀환!

스샷의 철학 철학의 스샷 7 아즈마의 느슨 철학 g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천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름을 살 만하게 만들어준 에어컨의 개발자 윌라스 캐리어부터 시작해서 인류상 위대한 혁신과 발명을 해낸 사람들은 다들 천재였고 위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약 천재만큼 중요한 어쩌면 천재보다도 중요한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

천재는 홀로 모든 걸 해낼 수 있으니 천재일까?



출판사이자 카페인 겐론 회사의 편집장인 아즈마 아재는 겐론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시민 강좌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체적으로 교육과 시상을 하며 여기서 키워낸 수상자가 졸업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또 상을 받는 건강한 교육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일본에서 가장 프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시민강좌라 자부하는 아즈마 아재.


아즈마 히로키 자신도 겨우 26살에 그 악명높은 현대 철학자 데리다로 박사논문을 내고 그 책을 수만권을 팔았을 만큼 분명 천재적인 사람이니, 자신같은 신인 천재를 발굴하기 위한 교육사업인가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즈마는 이 시민강좌는 단지 그런 목적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강좌가 아니라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그러면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강좌를 열고 운영하는 건 왜일까 그저 천재 괴짜 아즈마의 취미생활일까?



흔히 천재는 키울 수 없다는 천재 대망론이 예술계 쪽에서는 정론이다. 교육으로 천재를 키울 수 없다면 겐론의 시민강좌는 다 쓸데없는 짓일까? 아즈마는 그 천재 대망론을 긍정하면서도 전부 긍정하지만은 않고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천재는 저절로 나오겠지만 역사적인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듯이 홀로 두면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은 길어서 천재조차 재능이 고갈되기도 하고 스타일이 바뀌기도 한다. 이를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환경'이 없다면 지속적인 창작은 어렵기에 아즈마는 이 재능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평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수강생이 다 작가로 데뷔하거나 성공할 수는 없다. 그건 당연히 비현실적인 망상이고 사업체를 경영중인 아즈마가 그런 망상을 실현하기 위해 억지를 부릴 리도 없다. 그러면 데뷔하지 못하고 자기 책을 내지 못한 글쟁이는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난 안타까운 패배자일 뿐인가? 아즈마는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한다




프로로 데뷔하지 못한 아마추어도 다음 세대의 재능을 찾고 키워낸다는 자기의 역할이 있다. 마치 프로로 성공하지 못한 축구선수도 코치나 체육교사가 되어, 손웅정이 손흥민을 키워내며 위대한 재능을 발굴하기도 하듯이. 애초에 예술은 각자 자기 작품만 잘났다고 잘난 척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술을 감상해주고 소비하는 관객, 독자가 없으면 혼자 자기가 예술을 하네마네 떠들어봐야 결코 예술가라 부를 수 없다.


이는 스포츠에서 관객이 없으면 프로 선수들은 아무 생산성없이 혼자 공놀이하는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언과 동일하지 않은가. 손흥민이든 페이커든 한강이든 어떠한 분야든 월드 클래스의 엄청난 재능이라도 그를 봐주고 이해하고 응원하는 관객, 독자가 없다면?


아즈마의 말처럼 천재 대망론은 19세기 자본주의가 부흥한 이후 정론처럼 여겨진 자본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재능을 재빨리 사서 높은 값에 팔고 빠진다는, 사실상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주식을 찾는다는 논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허나 천재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독자와 관객이 없다면 문화는 절대로 발전하지 않는다. 아즈마 말대로 지금 일본에 필요한 것이 독자와 관객이라는 말은, 한국의 현실에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울림이다.




여담으로, 이전 연재에서 지속적으로 다룬 네이버웹툰 화산귀환에서 환생한 주인공, 매화검존 청명이가 아마 이런 천재 대망론의 아즈마식 부분적 수용에 잘 맞는 사례가 아닐까. 청명이는 환생해서 다시 화산파에서 무공을 연마하면서 전생과는 달리 혼자 강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어린 삼대제자들과 같이 수련하며 그들을 끝없이 채찍질하며 동기부여한다. 혼자 수련만 해도 힘들고 시간이 부족할텐데 왜 청명은 더 힘든 길을 걸을까



청명은 중원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환생하고서 화종지회에서 단 한번 그 재능을 외부로 보인 것만으로 화산신룡이라고 불릴 만큼 압도적인 주인공이지만, 그는 이미 전생에 천마에게 패한 경험으로 홀로 강한 천재의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다.


만약 자기가 더 강했다면, 그리고 자신과 비슷하게 강한 제자가 있었다면 화산파 수천 명이 천마 한 명에게 전멸하는 슬픈 역사는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청명이는 피곤하고 힘들어도 화산파 제자 전체를 강해지게 수련하는 길이 바로 자신도 이 험하고 잔인한 중원에서 살아남고 화산을 천하제일 문파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그 어려운 길을 간다. 천재 소설가에게 그를 알아보고 평가해 줄 수만 명의 독자가 필요하듯이...


또한 이는 작품 외적으로 한국 무협 장르에 대한 분석으로 봐도 타당해 보인다. 화산귀환은 정말 대중적으로 성공한 웹소설 원작의 천재적인 웹툰, 걸작이 맞지만 홀로 대단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한국 무혐 장르의 암흑기라 불리던 20년 전에도 묵향 같은 퓨전 장르소설이 나왔고 용비불패나 열혈강호같은 명작 무협만화가 있었고 그걸 계속 읽고 소비해 준 수십만명의 독자들이 있었다. 그 독자들이 암흑기에도 지속적으로 읽고 소비하고 평가하는 유형무형의 공동체가 있었기에 화산귀환 같은 천재적인 걸작이 바로 수억대의 조회수로 빛을 본 것이 아닐까




손흥민도 페이커도 그들을 봐주고 응원하는 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설령 그들이 바다 건너편에서 경기하고 있더라도, 내가 그를 응원한다는 것은 현대 인터넷기술을 통해 수백만의 뷰어쉽이라는 형태로 통계적으로 전달된다.


물론 그런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아니더라도, 겨우 열몇 명 봐주고 좋아요 라이킷 한번 눌러주는 나같은 이름없는 글쟁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독자, 관객이 없으면 슈퍼스타든 예술가든 정말로 혼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새삼스럽지만 제 별거 없이 난잡한 글을 읽어주시러 오신 모든 분들께 마음깊이 감사를. 그리고 오늘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창작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과 갈채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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