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이름같은 반찬의 코기토 에르고 숨
Sum, 꽈리고추간장제육의 우울. / 이상하
폭염에 내 몸뚱이 숨겨도 내 위장은 쉼따위 모르지
오늘의 식당 저녁 메인메뉴는 좀 길다 이름하야
미트볼펜네그라탕 그리고 꽈리고추간장제육
그런데 옆집에 미트볼펜네 그라탕은 매진 직전인데
꽈리어쩌구저쩌구는 왜 백개가 넘게 남았나
음식은 먹어 없어져야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
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던 17세기
나는 소비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신세기인데
내 미천한 혓바닥으로 네 존재를 증명해볼까나
호기롭게 대장군처럼 3800원 결제완료
다 받아서 앉자마자 그저 한 숨
누군가의 한 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노래처럼 무겁고 진짜 버거운 고기가득 식판
심지어 더 주겠다며 싱글벙글하신 배식 아저씨
꽈리고추간장제육의 그 긴 존재를 감당하기에
내 나이 든 위장은 이제 꽤나 왜소하구나
반쯤 해치우자 슬슬 전두엽부터 비명이 시작된다
다 처먹으면 너 이제 나랑 영영 끝이다 너!?
타자의 존재란 이렇게나 거룩하고 무겁도다
꽈리고추간장제육이 시무룩, 우울할까 걱정했으나
진정 염려해야 하는 건 내 뱃살과 소장대창들
죄스런 마음으로 반쯤 버리며 씁쓸해하며
한숨을 뱉으며 내 두통을 달래본다
어차피 남기면 음식쓰레기였자나 한잔해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며 이제 식당을 나서는데
멀리서 배식 아저씨의 웃음을 보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의 한 숨을 덜어낸 폭염의 저녁
*이하이의 노래 한 숨
Ps. 본문과 전혀 상관없지만, 어제 12000명이 모인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티원이 농심 상대로 승리 후에 페이커 대상혁의 29년까지 무려 4년 재계약을 발표했다. 국내외의 롤 관계자들 대다수가 환영하며 사실상 종신 계약이라는 뉴스도 터져나온다. 내일은 페이커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