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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후기) 영화와 시 한잔-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했냐... 그 말이라도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가출청소년들의 미쳐버린 하이퍼리얼리즘 일대기


엄마에게 버림받은 화영이가 엄마를 꿈꾸다 버려진


잔인한 묘사들보다 더 잔인하게 사랑은 나비처럼





포스터부터 언젠가 꼭 봐야지 했던 영화 박화영.

우연한 기회에 네이버 치지직에서 드디어 보았다


흔히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인간에게 기쁨과 쾌감, 카타르시스를 주는 예술과, 그와는 다르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눈물이 나고 인생이란 대체 무엇일까 탐구하게 하는 예술.


박화영은 저 포스터에서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했냐 라는 젊은 꼰대스러운 대사부터 예고하듯,

실로 불편하고 슬픈, 엄청나게 불편한 영화였고 바로 그래서 영화로서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 유하의 시집을 읽는 와중에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시가 마음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나비가 불꽃을 향해 날아가듯, 엄마에게 버려져서 자라난 박화영은 엄마가 되고 싶어한다. 자기 또래인 타인들에게 엄마로 불리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인정 욕망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해서 그 패거리들과 인생이 완전히 엇나간다.


초반에 경찰과 폭력으로 다투고 성매매에 얽히고 하는 일은 후반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다. 유사 성매매로 중년 남성을 협박해서 돈을 뜯으려다가 오히려 제압당하고 엎드린 상태로 당하는 박화영의 모습은 실로 끔찍하게 연출된다. 여기가 바로 밑바닥의 밑바닥이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모텔방. 봉준호의 기생충에 나온 반지하조차 이 장면에 비하면 바닥은 아닌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상황을 수습하려다가 가출패거리의 다른 남자를 불러서 흉기를 휘두르다가 반쯤은 실수로 살인까지 나버리는 현실. 그리고 그 살인을 누가 수습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박화영은 자기가 엄마라는 평소의 가스라이팅을 반대로 되돌려 받게된다. 네가 엄마니까 네가 책임져달라고.



엄마니까. 사랑하니까 살인조차 책임진 박화영.

3년간 소년원에 갔다가 다시 나와서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던 그녀를 다시 만났지만 그녀는 3년 전 일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듯이 연예인과 모델 생활로 바쁜 듯하다. 참다못한 박화영이 엄마 라는 키워드를 대놓고 꺼내며 자길 엄마라고 다시 불러달라고 요구하지만 그마저 그녀는 무슨 엄마? 우리 엄마?라고 뭉개버린다. 그리고 이젠 우리는 다시는 만날 일 없다는 듯 떠난다...


이 기막힌 스토리텔링의 박화영 영화의 라스트씬은 대체 어떻게 마무리될까. 설마 이대로 그냥 씁쓸하게 끝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감독은 내 상상력을 가볍게 넘어서버린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는 모르겠지만 박화영은 또 어디선가 다른 가출소녀들과 만나서 짜파게티인지 라면을 끓이고 있고 또 그 대사를 반복한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했냐"



어쩌면 박화영 자신도 3년간의 소년원 출소 후엔 스스로 알지 않았을까. 자신은 단 한 번도 남들에게 엄마인 적도 가족인 적도 없었다는 잔인한 현실을.


그런데도 박화영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그 3년을 보냈는데도 이전과 똑같은 삶을 반복한다. 아마도 화영이에게는 자기가 버림받았기에 그렇게나 열망한 엄마라는 삶의 방향성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사실은 화영이는 그 누구도 엄마처럼 사랑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나비가 불꽃에 뛰어들듯이 엄마라는 빛에 열광할 뿐. 이 불편한 영화보다도 불편한 진실이 딱 하나 있다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도 가출과 범죄만 하지 않았을 뿐 그냥 살던 대로 계속 산다는 삶의 진실.



그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는 고등학생 때 읽었던 이문열의 소설이 생각났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온 엄석대가, 왕처럼 군림하던 교실에서 새 교사에 의해 쫓겨난 뒤에도 사회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벌이다가 경찰에 쫓겨 다니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박화영이 가출소녀들에게 라면을 사서 끓여주며 환심을 사듯이, 엄석대도 독재자로서 초반에 학급 애들에게 먹을 걸 나눠주지 않던가




어쩌면 바로 그런 욕망의 반복강박적인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비슷한 것도 감독의 의도였던 건 아닐까. 최근에 읽은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을 패러디한 소설이듯이... 그런 면에서 박화영이라고 담백하게 이름붙은 이 영화의 부제를, 내 멋대로 이렇게 붙여보면서 이 씁쓸하고도 멋진 영화 박화영의 리뷰를 마쳐본다




박화영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또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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