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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쟁이 뚱냥조커 Jun 10. 2019

기생충의 송강호는 벤야민의 메시아?/스포일러 에세이2

희망은 과거에서 올 수 있을까 87년 오늘처럼

기생충의 송강호는   ?-기생충 스포일러 에세이 2. 190610       


 기생충을 보고 나서 평소 즐겨보던 영화리뷰 유튜브 찾아보니 역시 수많은 리뷰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ㅂㅅㄱㅂ 이라는 유튜버가 기생충 영화를 "봉준호 감독의 항복 선언문"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설국열차나 옥자의 봉준호는 분명 경제적 격차, 계급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해서 약간은 열려있는, 희망이 남아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허나 기생충의 마무리에서 기우가 자신의 계획으로 돈을 벌어서 아버지가 숨어있는 그 집을 사겠다는 장대한 계획을 말하지만, 여전히 반지하에 희미한 빛만이 새어들어오는 그 집에서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정말로 옥자 영화까지만 해도 희망을 말하던 봉준호가 그저 자본주의의 계급  변화할 기미가 없다고 항복한 것일까? 억압받는 이들이 변혁을 꿈꾸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을까? 지난 글에 이어서 우리는 벤야민을 다시 참조해 볼 필요가 있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상례임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 상태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눈앞에 나타날 것이며, 파시즘에 맞서는 우리의 입지도 그만큼 개선될 것이다.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그 적들이 역사적 규범으로서의 진보의 이름으로 그 파시즘에 대항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 20세기에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은 전혀 철학적인 놀라움이 아니다. 그 놀라움은, 그 놀라움을 야기한 역사 관념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라면 몰라도, 어떤 인식의 출발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 테제 전문           


 벤야민은 파시즘, 나치가 독일을 집권한 시대를 살았고 나치를 피해 망명하려다가 잡히기 직전에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유대인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항상 예외상태, 또는 다른 번역으로 비상사태에 처해있지만 사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을 본다면 이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 평상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한국의 맥락에서도 이는 어렵지 않게 파악될 수 있다. 언제 북한의 도발이나 남침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군인들은 항시 경계 근무를 서야 하고, 심지어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병영국가라는 점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같은 한국사회 분석에서 강조된 바 있다. 군대가 아니더라도 노동의 현장에서, 사실상 야근, 초과근무는  항상 해야 되는 것이고, 열정페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다들 젊을때는 그렇게 고생도 해보는 것"으로서 심지어 박카스 광고 등을 통해 미화되지 않는가? 기생충 영화에서도 다송이 생일파티 씬에서 이런 예외상태의 상례화는 드라마틱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수해를 입어서 반지하 집 전체가 침수된 상황이고 날짜도 휴일인데도  평일처럼 기우네 가족은 박사장네 가족의 생일 파티에 "출근"해야 한다. 박사장은 송강호에게 대놓고 말한다. 그냥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하라고. 건방지게 이것저것 다 물으면서 선 넘지 말고  까라는 대로 까라는 것이다. 송강호는 그 말도 참았지만 이후 박사장이 노골적으로 송강호에게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찌푸리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정한 예외상태"를 도래시킨다! 돈으로 고용된 자, 노예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어왔던 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무시당하자 감히 주인, 갑 에게 칼을 내려찍는 것이다. 물론 기생충은 황당무계한 판타지를 추구하지는 않는 영화이기에 이후 송강호는 집의 지하실에 평생 숨어살게 된다. 그러면 이것은 결국 일시적인 반항에 불과했을뿐, 새 외국인 주인을 구한 집에서 평생 숨어야 하는 송강호는 그저 패배했을 뿐일까? 우리는 이 패배한 과거의 기억은 그저 망각해야 하는, 흔히 말하는 흑역사로 치부되고 아무도 굳이 회상하지도 않고 기억되지 않는 걸까? 이에 대해선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2번과 6번 테제를 참조해볼 수 있을 .            


... 과거 세대들과 우리 세대 사이에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우리에게는 앞서 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고, 과거는 이 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역사적 유물론을 주창하는 자는 누구든 그에 대해 알고 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테제 2번 중에서 인용.            


먼저 2번 테제부터 살펴보자. 벤야민은 우리 세대에게도 과거 세대와 마찬가지로 메시아적 힘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힘은 희미하게 주어져 있다. 세계사를 돌이켜 본다면 1789년의 프랑스 시민혁명이나 1848년의 유럽 혁명, 그리고 1917년의 러시아 혁명, 한국에서 바로 오늘 6월 10일 87년에 벌어졌던 전두환 퇴진투쟁 등등 분명 과거 세대는 마치 메시아가 강림한 듯한 엄청난 변혁의 힘을 보여준 바 있다. 허나 그 힘은 희미하게 있기에 우리는 우리가 바로 과거로부터 기다려졌던 사람들임에도 그 힘을 잘 알지 못한다. 이는 마치 기생충 영화의 마지막 씬 직전에 모르스 부호로 기우가 송강호의 편지를 해독하는 장면을 떠오르게 하지 않는가? 송강호는 희미하게나마 과거로부터 지금 세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 기우는 그 메시지를 인식한다. 이제 6번 테제로 넘어가보자.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위험의 순간에 번득이는 어떤 기억을 제 것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느닷없이 주어지는 과거의 이미지를 꼭 붙드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의 과제이다. 그 위험은 전통의 존속 만큼이나 그 전통의 수용자도 위협한다. 둘 모두에게 그 위험은 지배계급에게 도구로 넘어갈 위협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통을 제압하려는 타협주의로부터 그 전통을 다시 뽑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메시아는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도 오는 것이다. 과거 속에서 희망의 불씨를 일으키는 재능은 적이 승리한다면 죽은 자들도 그 적 앞에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완벽하게 확신하는 역사가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적은 승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6번 테제 전문.               


벤야민은 과거의 역사를 표현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라 보지 않는다. 위험의 순간에 과거의 이미지를 붙들어 제 것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벤야민에게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전통을 제압하려는 타협주의로부터 그 전통을 다시 뽑아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데, 여기로부터 세월호참사  단원고 유족분들의 어떤 타협적 보상도 거부하고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진상조사를 원했던 투쟁과, 1617 당시의 촛불집회가 "질서있는 퇴진"이나 "내각제 개헌"같은 타협이 아니라 오직 박근혜 대통령 하야, 탄핵을 요구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기억        . 기생충 영화에서도, 자신을 냄새난다며 선을 넘고 인간적 존엄을 무시했던 박사장에게 송강호는 적당히 그런 말씀 하시면 안되십니다 같은 타협이 아니라 칼로서 답했다. 물론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 속에서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고, 일부 사람들이 평하는 것처럼 무슨 봉준호가 좌파라서 영화로 폭력 유혈 혁명을 선동한다는 것은 다소 지나친 해석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송강호의 이런 행동은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를 극복하는 자로서 오는 것이다" 라는 벤야민의 말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을까?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공황 이후 지금 시대는 북한도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고, 빌 게이츠도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고, 마침내 바티칸의 교황마저도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는 세상이다. 마치 공고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야말로 이 시대의 적그리스도라고 교황마저도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더 나아질 거라는 순진한 진보적 믿음만으로 과연 세상은 나아질까?        ?...       



벤야민에 대해서 강의록을 남긴 고 김진영 선생님은 강의록 제목을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라고 정하셨다. 벤야민이 남긴 수많은 어록 중에서도 이 말을 강의록의 제목으로 정하신 것은 그만큼 벤야민이 남긴 메시지 중에서도 지금 시대에 이것이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잠재되어있다고 보신 것이 아닐까. 다음 글에서는 드디어 송강호와 벤야민의 곱추 난쟁이를 연결지어서 혁명   의 이중성과, 그 유명한 9번 테제 앙겔루스 노부스. 새로운 천사에 대해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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