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부엉이형 인간. 해가 떠야 잠이 오고 점심시간이 지난 두시는 넘어야 눈을 뜬다. 그러나 오늘은 왜인지 다들 출근했을 9시가 넘어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수면용 필살기인 유튜브 빗소리 열시간짜리를 켜놓고 겨우 잠이 들었다. 허나 또 이상하게도 몸은 평소처럼 두시 반에 깨어났다. 당연히 몸은 찌뿌둥한데 창밖에는 어슥어슥 먹구름들이 홍대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하다 만 게임을 조금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5시! 4일만에 밤에 야간근무를 나가려면 얼릉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다행히도 어제 이상하게 좀 욱신거리는 듯해서 걱정되던 내 오른쪽 발목은 멀쩡해졌다. 그냥 그저께에 자는 자세가 이상해서 다리가 아픈 거였을까. 약간 컨디션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오늘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 자체가 짜증이고 또 삶이겠지. 이렇게 짜증날 땐 역시 짜장면같은 단짠이 인생을 살만하게 해준다. 아주 약간이지만.
홍대 앞 짜장면집 여기는 이제 10년이 되어가지만 나름 티비에도 나온 맛집이다. 그리고 티비에 나온 것보다도 더 믿음직한 사실은, 이 버티기 힘든 홍대에서 98년부터 20년 넘게 장사중이라는, 그것 하나로 이미 충분히 믿을 만하다. 게다가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맛 이외에 알파가 더 있다
이거이거 이렇게까지 하고나니 본격 광고글같기도 하다. 하지만 구독자 수십명에 불과한 내 브런치에 굳이 돈주고 광고하려는 점주가 있을리가. 어디까지나 오늘의 짜장면 맛집이 이케이케 좋았다고 감상을 말할 뿐이다. 다행히 오늘 비도 오는 날이라 가게 안에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그리고 이 사진의 포인트는 가격 뿐만 아니라 볶음밥 아닌 복음밥이라는 웃음이 나오는 귀여운 오타다. 마음이 복잡해지는걸 한번에 정리해주는 듯한 이런 귀여운 오타는 맞춤법에 민감한 나같은 인간에게도 나도 모르게 정신무장을 해제하고 슬그머니 웃음에 나오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본 게임인 윤기 좔좔 흐르는 우리의 주인공 짜증날땐 짜장면이 나왔다. 무려 3분 컵라면보다도 빠르게 주문한지 1분만에 나왔다. 덕분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못해 입맛없던 내 입은 곧바로 전천후 전투모드로 쉽게 전환되었다. 이제 뭐 긴 말이 필요없는 시간이다.
정말로. 굳이 무슨 요리만화나 수요미식회에 나오는 것처럼 요란한 수식어도 화려한 묘사도 필요없었다. 난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었고 나 외엔 손님도 없기에 옷에 짜장도 흘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줄리어스 시저가 전쟁에서 이긴후 로마 전령에게 전했다는 3마디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으리라. 왔노라. 먹었노라. 불렀노라...
어릴적에 중학생때인가 짜장면이라는 수필을 보고서 와 음식에 대해서 이렇게 맛있어보이게 글을 맛깔나게 쓸 수가 있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초등학생때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운동회가 끝나고 사달라고 졸라서 결국 먹었던, 이제 20년도 지나서 정말 내 기억인지도 흐릿해지는 추억도...
처음에는 그 맛난 짜장면 수필처럼 써보고 싶었지만 역시 내 능력부족이고, 어린시절의 짜장면 추억을 제대로 꺼내기에는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게 많다. 이 아무말대잔치 줄글을 좀더 정제하고 다듬어서 시로 쓸 수도 있을까. 글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시인들의 신께서 보살펴주시더라도 사람들에개 내보일만한 시가 나올지는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저 이렇게 오늘도 도망가지 않고 75일 넘어 글을 썼다는 것을 하나의 자기위안으로 삼아본다. 100일쓰기 중에 어느새 사분의 삼을 넘어간다.
P.S. 짜장면은 중식일까 한식일까. 분명 중국에서 왔지만 중국에서 주로 먹는다는 춘장면과 한국식 짜장면은 이미 다른 음식이 아닐까. 허영만의 식객 만화에서 부대찌개도 50년 지나 사실상 이젠 한식 아니겠냐고 주인공 성찬이가 말하듯, 짜장면도 좀 더 자연스럽게 전통 한식중 하나로 여겨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갔던 한식뷔페 자연별곡 메뉴 중에서도 짬뽕은 없어도 짜장면은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