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 그때의 나와 친구들아
지난 4월부터 다시 시작한 수영 강습이 이제는 제법 익숙한 아침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의 아침 풍경을 구성하는 이들과도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스포츠센터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안내데스크에 계시는 분이 반겨주시는데, 매번 랜덤하게 "안녕하세요~" 혹은 "좋은 아침입니다~"하고 인사를 건네주신다. 자주 듣기 어려운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한 하루는 발차기도 빵빵 힘찬 좋은 아침~이 된다.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만 수건을 깜빡해서 난감해하는 내게 무료로 헬스장 회원용 수건을 빌려주시곤 마치 둘만의 비밀이라는 듯 '쉿' 하고 입술 위에 검지 손가락을 올리는 제스처를 하셨는데 그날 이후로 이곳에 대한 애정이 플러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스장 수건 한 장 빌려 쓰는 일이 뭔 비밀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다정한 배려는 관계를 빠르게 이어주기도 하니까.
이제는 무뚝뚝한 우리 반 선생님과도 종종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래봤자 수강생이 고작 두 명 있는 반에서 나 외에 다른 한 명이 오지 않으면 샤워실까지 마중 오셔서 "공복이시죠?"(대충 빡셀 거라는 뜻), 왔으면 "누가 오니까 좋죠?"(적당히 빡셀 거라는 뜻) 라며 해맑게 웃는 정도지만.
아무래도 수강생이 적다 보니 탈의실에서 선생님과 단둘만 있는 경우도 있다. 굳이 코시국때문이 아니더라도 깨 벗은 타인과 나란히 있으면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얼마 전부터 우리 사이엔 성스러운 bgm이 깔리기 시작했다.
7시 타임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추정되는 어머님 두 분이 새로 등록하신 거다. 강습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르시기를~" 탈의실은 여지없이 예배당으로 탈바꿈. 나체로 기독교 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 숙여 홀리해진다. 내가 믿어주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누추한 이곳까지 강림하시어 은총을 내려주시니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싶다. 예배만 흐르면 차라리 다행(?)이다 싶은데 두 어머님의 일상 토크가 콜라보를 이룬다. 어쩔 수 없이 자동 구독하게 되는 작은 공간인지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휘휘 가로젓기도 한다.
주제는 매번 달라지는데, 지난 주제는 '자식의 키는 엄마 유전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였다.
어릴 적부터 별명이 땅콩인지라 키에 민감한 나로서는 절로 귀를 쫑긋하게 되는 주제였다. 어머님 A의 주장인즉슨, 남편분의 키가 작은데 본인이 평균보다 큰 편이라 덕분에 아드님이 겨우겨우 콤플렉스는 면했다는 것이었고, 이에 어머님 B는 동조하며 며느님의 키가 172cm라 손주분들 신장이 모두 180cm를 훌쩍 넘겼다며 보다 정확한 수치로 논제를 입증하셨다. 나는 즉시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싶었지만, 딱히 제시할 예시가 없었다. 제기랄.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어떡해 우리 애기...' 하고 그저 무력하게 속으로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있지도 않은 자식에게 괜한 부채감을 안고 수영장을 나서는 길, 언젠가 나도 친구와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될까?'에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젠가는~ 하고 막연한 물결로 남겨두었던 것들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과의 단톡방이 활기를 띠었다. 친구가 임신을 알려왔던 거다. 작년 이맘때였나. 안타까운 소식을 건너 전해왔던 친구였기에 모두 말은 안 했지만, 바라왔던 메시지였다. 주변에 알리기 조심스러운 초기를 지나 어느덧 씩씩하게 막달을 달리고 있는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다행이었다.
얼마 후 나도 모르게 다른 단톡방에 초대됐다. "엇 이 방에 조이미가 없었네?" 하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초대된 방은 여자친구들로만 구성된 곳이었는데 나 외에는 모두 기혼자에, 이미 아이가 있는 친구도 있었다. 짐작건대 육아나 부동산, 주식, 시댁 행사같은 류의 정보를 나누는 방인 것 같았다. 그마저도 일하다 뒤늦게 본 탓에 대화는 꽤 진척되어 있었는데 도통 알기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따라잡기 어려웠던 건, 이미 나아간 대화 탓은 아니었다. 우리들이 주로 사용하는 제1의 언어가 달라졌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사회복지를 전공해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과 분기점이 생긴 건 아마도 나 혼자 영화 업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잦은 야근 탓에 생활보다는 일에 더 매몰되어 있던 나는 같은 일을 하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자신의 삶을 착실히 꾸려가는 모습에 뿌듯해하면서도 그사이 너무나도 달라진 세계에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이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그러려니 하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수다로 밤을 지새우던 우리가 어느샌가 겉도는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관계도 수시 업데이트로 관리되지 않으면 과거에만 고여있다는 걸, 내가 그리워하는 그때의 우리는 욕심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편해졌다.
분명 편해지긴 했는데 때로 씁쓸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지만, 예전처럼 같은 것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서운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씩 무뎌지다 무던해지는 걸까. 정말 다들 그러려니 하며 사는 걸까.
선우정아의 노래 '그러려니' 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지금 발 디딘 세계에서, 우리는 예전처럼 어울릴 수 있을까.
/ from 효은글감 ‘분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