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열 Nov 29. 2022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4

이혼한 선배

[이혼 한 선배(휴대폰 대리점 사장)]


누군가에게 나의 지금 이 심정을 속 시원하게 털어 놓고 싶은데, 

정작 생각해보니 그럴 만한 사람이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답답하다. 

미치겠다.

속상하다.

괴롭다.

돌아버리겠다.

그리고 억울하다.


거의 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

출근도 해야하는데, 머리도 아프고... 평상시처럼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님 다음 대책을 세워야 하는것인지 도통 감히 안 잡힌다.


이른 아침, 노트북을 켜고 상무님에게 급하게 카톡 문자를 보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오늘 하루 월차를 쓰겠다라는...그리고 핸드폰이 박살이 나서 통화는 지금 곤란할 것 같다는 문자를 남겼다.

잠시 후 몸조리 잘 하라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상황 봐서 이번 참에 휴가까지 쓰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몸조리? 마음조리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일 한다고 휴가도 제대로 못 챙겼다. 휴가는커녕 주말도 늘 일했던 나이기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이 화요일이니 3일 휴가를 써서 이번주말 까지 쉬겠다고 상무님에게 문자를 다시 보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몸과 마음 추스려서 다음 주에 복귀하겠다고.


일단 회사 출근문제는 이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나도 모르게 휴~~하는 안도의 숨소리인지, 절망의 숨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한숨만 나오더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온 몸이 땅으로 가라 앉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집안을 살펴보니 집사람과 아이들은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아내와 좀 더 얘기를 할까도 고민했지만, 당장 얼굴 조차 마주하기 싫을 정도로 그녀가 너무 싫었다.

밉고 역겹고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얼굴을 보면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나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땐 피하는 게 상책이다. 일단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리고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얼나마 걸었을까? 

출근을 하려는 사람들과 등교를 하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뛰고 통화하고 하는 모습들이 새삼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지금 내가 남 걱정할때가 아니다. 내 코가 석잔데...휴우~~~

그제서야 내가 1시간 넘게 걸어서 용진형의 핸드폰 대리점 앞에 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대리점 문은 닫혀 있었다


용진형은 2년전 이혼을 한 대학 선배다. 

학교 다닐때는 그렇게 친하진 않았었는데, 졸업 후 우연히 동문회에서 만났다가 지금까지 술친구로 만나고 있는 사이다.

용진형한테는 나의 사실을 털어 놓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을 안고 무작정 찾아 온 것이다.

겸사로 핸드폰도 다 박살이 났으니 새로 개통도 할겸,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핸드폰에 담긴 동영상을 복원 할 방법을 묻고 싶어 온 이유가 사실은 더 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담배를 적어도 5대는 피운 것 같다.


“민석이? 이 시간에 왠일이야?”


“형~~, 장사하는 사람이 이렇게 오픈을 늦게해도 돼요? 한참을 기다렸네”


“늦게라니...9시 오픈인데..아직 10분 전인데 뭘...”


“적어도 1시간 전엔 와서 청소도 하고 미리미리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지...눈 빠지는 줄 알았네”


“출근 안 해? 무슨 일로? 암튼 들어가서 얘기하자”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대리점 안으로 들어왔다.

모닝커피를 준비하는 용진형을 뒤로 하고 나는 새로 나온 핸드폰들을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보다가


“핸드폰 새로 할려고 왔지...형도 볼겸 ...할인도 받고 겸사겸사”


커피잔을 들고 쇼파에 앉으며 용진형은 고개를 갸웃겨리며 


“아닌 거 같은데...무슨 꿍꿍이가 있구만...냄새가 나는데...”


“무슨 냄새?”


“혹시...너...이혼? 때문에 온거 아냐?”


“오마이갓!!! 이혼이라니?...

쉣!!...근데 어떻게 알았어? 형 요즘 관상배워? 아님 신끼가 있나? ”


“척하면 딱이지...나한테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애들은 십중팔구 이혼 때문이야.

내가 이혼 선배잖니...그러다보니 무슨 문제만 있으면 찾아오는 애들 너 말고도 널렸어요”


“귀신이 따로 없네...아직 뭐 이혼까지는 좀 오바같고...”


잠시 입을 다물고 민석은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불과 몇시간전에 일어난 일을 용진형에게 털어 놓았다. 

자신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참 어이없고 민망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충 이런 상황이야...형이 보긴 어때? 참아야 돼? 아님 엎어야 돼?

솔직히 누구에게 물어 볼데도 없고, 마음은 답답하고 죽을 것 같아...”


“복잡하네...머리 아프겠어...으이구...그러게 미리미리 신경 쓰고 좀 잘하지 그랬냐?

그 잘난 광고가 뭐라고? 맨날 일만 하더만 꼴 좋네...”


“그러게 말이야...내 팔자가 지랄같아...그건 그렇구 핸드폰 말인데 그 안에 동영상도 있고, 그 놈 부모랑 통화한 내역도 있는데...복원 가능할까? 혹시 몰라서 가져 와 보긴 했는데...”


민석은 가방 안에서 부숴진 핸드폰 조각들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용진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왠만한 남자도 이렇게 부시진 못 할거라면서 혀를 내둘렀다.


“쓰레기네...복원은 개뿔...안됐다만 버려야 겠다...그리고 유심도 확인을 못 해...

이런 헛똑똑이 같으니...어휴~븅신새끼”


잠시 희망을 가졌던 민석은 용진형의 말에 실망이 컸다.

어제 검사 친구랑 통화했을 때 나중을 위해서라도 물증을 꼭 남겨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그래서 그놈의 자백이 담긴 동영상과 친필로 적은 확인서를 남겨 놓은 거였는데...

용진형은 답답하다는 듯 민석을 바라보다가, 


“그래서 어쩔건데? 할거야? 말거야?”


“뭘? 이혼?”


“아니 핸드폰 새로 한다면서? 노트로 할거야? 폴더로 할거야?”


“아....핸드폰....누가 장사꾼 아니랄까봐... 이 와중에도 형은 참....”


“민석아,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금 더 냉정하게...지금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잖아... 친구나 지인들에게 좀 더 고민을 말하고 조언을 들어 봐...

나처럼 홧김에 일 저지르고 후회하지 말고...”


“형, 이혼한 거 자랑했잖아? 후회한다고? 그런 말은 처음 인데..”


“쪽팔리니까 사람들 앞에 그렇게 말한거지...사실 이혼이 자랑은 아니잖아...더군다나 너는 어린 두 딸들도 있는데, 니가 키울거야? 너희 부모님이나 동생들에게는 말 할 자신있어? 이혼이라는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그럼 어째? 참고 살아야 돼?”


“그건 니가 결정해야지...니 인생인데...감히 내가 뭐라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냐?

나중에 너에게 무슨 원망 들으려고...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같이 고민해보자...”


"아, 맞다...진욱이형 재혼 했다고 했지? 잘됐네...형 보다 이혼 선배니까...

말 나온 김에 전화 한번 해야겠다"


민석은 새로운 핸드폰을 개통하고 대리점을 나왔다.

고민만 더 커졌을 뿐 머리만 아프다.





<5부에서 계속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넌 너무 솔직해서 탈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