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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열 Nov 30. 2022

이혼 할 때 만나게 되는 사람들_5

재혼한 선배

[재혼 한 선배 (독립책방 사장)]


새로 핸드폰을 개통하고 첫 통화의 주인공은 동네에서 작은 독립책방을 하고 있는 진욱이 형이다.

한때는 ‘나이트 브라더스’ 라고 불릴 만큼, 밤의 유흥활동을 죽자사자 하며 같이 마시고 즐기는 그런 사이였던 형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이기에 형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결국 이혼을 했고, 작년에 재혼을 한 팔자 사나운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 형이 지금은 조용히 은둔하며 어울리지도 않는 책방 사장인지 책방 직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용히 살고 있다.

“형, 잘살지? 신혼재미는?”


“신혼은 무슨... 해가 서쪽에서 뜰라나? 니가 전화를 다 주고...”


“오늘 낮 술 어때?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책방에도 가보게”


“낮술?...좋지...나야 뭐 늘 한가하니까. 어차피 오늘 책방은 쉬는 날이라 괜찮아”


“오케! 그럼 이따 봐~”


작년에 온라인 광고 대행사에서 회사를 옮길 생각없냐는 오퍼가 있었다.

지금 보다 연봉도 올려주고, 나의 크리에이티브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주겠노라고...

처음엔 그런 제안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니 조금 우쭐했었다.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고민해보겠다고 그리고 이런 제안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아주 멋지게 정중하게 답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나 자신을 대견해하며 잠시 행복했었다.

이런게 행복한 고민인건가? 

혼자서 갈까? 말까?를 반복하고 반복했다.

막상 고민의 뚜껑을 열어 보니, 쉽게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여기서 고생한 게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왔는데...왜? 

옮긴다고 내 인생이 확 바뀌는것도 아닌데, 그래 봤자 또 광고인데...왜?

연봉? 올라봐야 세금 제하고 이것저것 떼면 결국 몇 십만원 더 받는건데...왜?


고인물에 너무 오래 있었잖아...여기서 너무 지쳤잖아...그러니까!

내가 지금 광고 말고 뭘 할건데? 10년을 넘게 했으면 그게 나의 천직 아닌가?...그러니까!

당장 몇 만원이 없어서 와이프랑 늘 돈돈거리며 아웅다웅하는데,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그러니까!


그 때 나의 고민을 싹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진욱이 형이다.

맨날 술 마시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형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명석한 답을 주었다.


“민석아, 여기 물컵 안에 뿌연 흙탕물이 담겨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컵을 들고 바라봐봐. 뭐가 보일까?...물? 아님 흙?

이두저두 아니지...물일수도 있고, 흙일수도 있는거니까...

세상 살면서 참 이런 고민을 해야 될 때가 많아...앞으로는 더더더 많아 질거야...

그때마다 머리쥐어 뜯고 잠 못자면서 너를 달달 볶을거야?”


“우리형, 참 드라마를 많이 봤네...그래서 결론이 뭐야? 흙탕물을 어쩌라는건데? 

어휴 답답해,속 터져~”


“시간이 답이라는거지”


“형,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야...난 지금 시간이 없다구, 당장 결정해야 한다구, 갈지 말지를...”


“이럴 땐 가만히 흙탕물을 놔 두는거야, 답답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그럼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거든. 

흙은 흙대로 아래로 가라 앉고, 물은 물대로 투명하게 자기의 색깔을 보여주지. 

이게 나의 대답이야”


“공자님 나셨네...더 복잡해진 것 같아”


“시간이 없다고, 답답하다고 절대 컵을 들고 흔들면 안돼. 서두르면 안돼.

그럼 다시 뿌옇게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뭐야? 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기다려~~~곧 흙이 가라 앉고 물이 맑아질테니까...”


그랬다. 진욱이 형의 말처럼 내 머릿속이 흙탕물 같았다.

결국 이틀 뒤 나는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고, 우연인지 필연이지는 지금도 모르겠으나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 당연히 연봉도 올랐고...

그때 내가 결정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시간을 좀 더 갖고 기다렸을뿐.

무엇을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마음이 가는 쪽을 기다렸던 것 같다.


지금도 어찌보면 내 머릿속은 흙탕물이 되어 버린거다. 근데 이번 흙탕물은 좀 사정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흙이 아닌 아주 시커먼 진흙 같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쓰레기 같기도 하고, 아님 분리가 될 수 없는 썩은 물 일수도 있다.


오랜만에 낮술이다. 

취하면 부모도 몰라 본다는 낮술.

사실 요즘은 저녁에 술 먹는 후배들이 거의 없다. 회식도 파스타나 쌀국수 뭐 이런 음식 위주의 회식이다 보니 기껏해야 맥주 정도다. 물론 일 때문에도 술을 예전 만큼 마시지는 않았다.

평냉에 제육 반, 만두 반을 시켜 놓고 진욱이 형과 벌써 2병째를 마시고 있다.

술이 물처럼 술술 들어 가는걸 보니, 예전의 기억들이 스물스물 올라오면서 기분이 알딸딸해지니 몸도 마음도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술 마시는 일에만 집중했다.

진욱이 형도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먼저 물어 보지 않았고 나도 먼저 말 하지 않았다.


주거니 받거니 3병을 훌쩍 비웠다. 

무슨 노래말 처럼 밥만 잘 먹더라 술만 잘먹더라 인가...

간만에 맛있는 낮술을 했다.

“책방은 잘 돼요? 바빠서 한번도 못 가봤으니까 나온 김에 책방 구경이나 갑시다”


“책방 구경? 무슨 책방이 관광지냐? 책방은 책을 사는 곳이야...너 딴데 가서 그런 말 하면 욕먹는다. 

사람들이 책을 안 사...아예 보질 않으니 살 마음도 없는거겠지만...”


“아 그래? 쏘리쏘리...그럼 책 좀 사러 갑시다. 형님~”


“오늘 쉬는 날인데...쩝...매출 좀 올리러 그럼 가볼까?”


1층도 아닌 3층, 거기다가 엘리베이터도 없는...그런 곳에 책방이라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들의 냄새라고나 할까, 아니 종이냄새? 아니 그윽한 향기가 풍기는 아담한 책방이다. 곳곳에 책들과 스티커,엽서, 노트... 형과는 어울리지 않게 잘 꾸며진 책방이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책의 제목부터 크기, 모양 아주 다양한 책들이 많이 보였다. 

자격지심일지는 몰라도 나는 책들 앞에서 조금은 숙연해진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읽은 책이 거의 없다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동안 뭐로 먹고 살았는지, 너무 책을 등한시 한건 아닌지...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기보다 형 이런 센스가 있었나? 감성적인데가 있었네...사람이 달라보여~~”


“나는 그냥 아침에 나와서 청소하고, 오픈 준비만 도와주는거야...대부분이 후배가 하는거야. 

너도 알지? 선미라고...나랑 오래 같이 일해던 후배...선미가 사장님이지..”


“알지...형은 참 복도 많아...후배랑 이렇게 책방도 하고...부럽다”


“쓸데없는 말 말고 책이나 사”


“내가 책을 안 읽은지 너무 오래되서, 형이 알아서 몇 권 골라줘. 애들 읽을 그림책도 같이”


“비싼 책만 골라야겠다...ㅋㅋㅋ”


진욱이 형은 이리저리 책방 곳곳에서 책들을 골랐다. 

애들 선물이라며 스티커와 엽서들도 같이 종이백에 담아서 주었다. 

책방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참 따스하고 아늑했다. 

책방은 뭔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낮술도 먹었고, 책도 샀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이번엔 또 무슨 흙탕물을 갖고 왔는데?”


“흙탕물이 아니구 거의 시커먼 썩은물이야...”


“썩은물도 물이잖아...뭔데?”


“형은 이혼을 왜 했던거야? 물론 지금은 재혼도 했지만...

이혼할 때 고민했을거 아냐?”


“이혼의 이유는 많았지...부부사이에 문제가 한둘이냐? 그냥 서로 참고 이해하면서 살아간다고 애는 썼었지만 그게 힘들더라구, 내가 이혼한 가장 큰 이유는 싸우기 싫어서였던 것 같아”


“뭣 때문에 싸웠는데? 부부야 늘 싸우는거 아니야? 그러면서 정들고 하는거지 뭐...”


“싸우는 이유가 너무 많았어. 돈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장모 때문에, 밥하는거 때문에, 청소하는거 때문에, 분리수거 때문에, 양말 벗는거 때문에, 코 고는거 때문에, 드라마 때문에, 프로야구 때문에, 머리카락 때문에, 치약 때문에, 여행 때문에, 외식 때문에, 술 때문에, 날씨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뭐야? 아직도 더 남은거야? 뭘 그렇게 사소한 것 같고 다 싸워? 형도 참 가만보면 이해가 안가는게 많아...”


“그러니까...하나부터 열까지 다 싸웠거든...동갑이다 보니 서로 절대 져줄 마음도 없고, 만나지 못할 평행선을 늘 이뤘지...그래서 이혼했어”


“그럼 재혼은 또 왜 했데? 이번 형수님이랑은 안 싸워요?”


“안 싸우지...나보다 나이도 연상이다 보니 이해심도 많고, 싸울일을 미리부터 만들지 않는다고 할까?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미리 차단해서 안 하니까, 말부터 행동까지 심지어 마음가짐까지도...

그러다보니까 싸우지 않게 되더라구, 신기하게도”


“신기하네, 결국 남자에겐 연상인건가?”


“재혼은 내가 할려고 해서 한 것도 아니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하게됐지.

이혼하고 나서 얼마나 좋았는데, 싸울일이 없으니까...”


“요즘은 젊은 애들 비혼이다 뭐다 해서 혼자사는게 트렌드인데, 형은 참 남들 한번도 못하는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능력자야 능력자~”


“이혼할거면 해 봐~나는 찬성이야. 

대신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마음으로...

남 탓 할거면 시작도 말고...”


“형은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안 하네...나도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건가?”


“당하긴? 이혼 생각보다 나는 좋았어. 진심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더 좋은 사람과 재혼도 했잖아...ㅋㅋㅋ농담이고... 


역시 이번 흙탕물은 지난번과는 다르네...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해결 해줄거야.너무 조급하게 맘 먹지 말고, 기다려봐”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나고 책방을 나왔다



빵~~빵~~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크락션을 누르는거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차가 보인다


“오빠~ 이 시간에 이 동네에 웬일이야?”


헉!! 여동생 민지가 나를 알아보고 차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한다


하필 여기서...

<6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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