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빵~~빵~~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크락션을 누르는거야 하고 뒤를 돌아보니 낯익은 차가 보인다
“오빠~ 이 시간에 이 동네에 웬일이야?”
헉!! 여동생 민지가 나를 알아보고 차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한다.
무슨 잘못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반가움보다는 움짓 놀램이 먼저 앞섰다.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이 나는 금새 미소를 지으며 오바하듯이 동생에게 손짓을 했다
“웬일은? 자료조사도 좀 하고 책도 좀 살겸...겸사겸사 나왔지”
“여전하네, 시간 돼? 이렇게 본 김에 커피나 한잔 해. 워낙 바쁘신 분이니까...”
근처 작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민지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지만 결혼 준비를 앞두고 있는 터라 조금은 말라 보였다.
워낙 눈치가 빠른 동생이라, 조심 조심을 하며 말을 나눠었다.
“결혼 준비하느라 힘들지? TV는 내가 사줄테니까...제일 좋은걸로...알지?”
“오빠~ 무슨 소리야? 남편 될 사람이 TV회사 다니는데...하여간 관심 좀 갖고 삽시다.
TV말고 더 비싼거 사줘야지...잘 나가는 김팀장님이신데”
“아...맞다. 큰 실수 할뻔 했네...하하하~. 그럼 냉장고? 에어콘? 뭐가 필요한지 말해봐”
“안마의자 어때? 며칠 전에 친구네 집에 갔다가 안마의자 앉아 봤는데, 완전 환상이더라.
태국 마사지 저리 가던데...안마의자 좋다!!”
“안마의자?”
“신혼집에 안마의자? 너도 참 특이해. 지난달에 나도 안마의자 광고 경쟁PT 해 봐서 좀 알긴하지.
근데 비싼 건 엄청 비싸던데...알아봐야겠네”
“너무 비싼거 말고, 컬러도 너무 구린거말고, 오빠 내 스타일 알잖아? 센스있게 알지?
화려하지만 심플하고, 고급지면서도 트렌디하게, 뭐 이런 ”
“됐고...집엔 별일 없지? 엄마, 아빠도 ?”
“무슨 남 얘기 해? 가끔 엄마한테 안부 전화도 좀 하고 그래...맨날 그 잘난 처갓집만 챙기지말고”
“챙기긴 누가 챙긴다고 그래?”
“명절 때만 얼굴 보이지 말고, 엄마 아빠가 손녀들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데, 새언니가 시부모가 집에오는거 싫어하니까 가서 보지도 못하고, 쯧쯧”
“싫어하긴 누가 싫어해?”
“오빠, 나 김민지야...내가 그렇담 다 그런거야...그냥 우리집은 장남 하나만 잘 살면 된다 하고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사는거야...알고는 있으라고”
내심 뜨끔한 한 방을 먹었다.
며느리 눈치 때문에 손녀들 보는 것도 어려운 엄마, 아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명절 때도 전날 가서 음식 준비하고, 당일 아침에는 처갓집으로 가기 바뻤다
하루 더 있다가라는 말에도 회사 출근해야 한다는 핑계를 들었다.
명절 때만 되면 양가 부모님께 드릴 선물, 용돈으로 맨날 신경전을 벌였다.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그런거 챙기냐면서, 형편에 맞게 그냥 과일이나 한 상자 사고 말자는 아내의 의견에 나는 그래도 일 년에 딱 2번인데, 용돈은 못 하더라도 그럼 갈비라도 사서 드리자고 했지만, 늘 생활비가 없다고, 애들 유치원비 내야 한다고, 집 대출 갚아야 한다는 여러 이유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언니는 잘 있지? 우리 조카들도 못 본지 오래 됐네...아 맞다..그렇잖아도 말 할까 했는데...
나 결혼식 입장할 때 우리 이쁜 조카들이 앞에서 꽃 뿌리며 들러리를 해주면 어떨까? 하는데...
괜찮지? 대신 애들 드레스는 내가 사줄테니까”
“어...그래...”
“뭐래? 왜 이리 대답이 뜨뜻미지근 해....언니가 싫어할까봐? 그럼 내가 직접 부탁할게”
“아니야, 내가 얘기하면 돼...그리고 싫어할게 뭐 있어...가족일인데...
됐어. 전화하지마. 내가 알아서 말하게”
“왜 싸웠어? 느낌이 오는데...뭐 있구나? 말해 봐 뭔데..??”
“있긴 뭐가 있어? 없어~”
“내가 오빨 잘 알지...예전부터 시험 망치면 늘 이랬거든...평소엔 늘 빠릿빠릿하던 사람이 뭔가에 홀린 듯 딴 생각하고 상대방 말에도 반응이 늦고, 엉뚱한 소리하고, 오바도 심하고...늘 그럴때마다 오빠는 시험을 못 봐서 불안해 했었어...모범생 콤플렉스 같은”
“누가 들으면 전교 1등하는 줄 알겠네...”
“그니까...얘기해봐...뭐야? 언니 모르게 주식했다가 폭망했구만, 아님 바람이라도 피다 걸렸나?”
하필 라떼를 입에 한 모금 넣었는데, 그때 마침 켁하고 나도 모르게 사래가 걸렸다.
입안에 커피가 풉하고 쏟아져 나왔다. 급하게 테이블에 놓인 티슈로 입과 옷을 닦았다
누가 봐도 참 연기는 꽝이다
“뭔 소리야? 누가 바람을 펴~~~? ”
“바람이네...누군데? 첫 사랑?”
“쓸데 없는 소리하지마. 아니야”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하고 말았다.
안 된다. 민지에게 조금이라도 빌미를 주거나 틈을 주게 되면 들키고 만다.
절대로 안 된다.
“아님 , 그 반대? 혹시 언니가?”
“........”
“오 마이 갓~~미쳤어? 사실이야? 정말? 아니지? 아닌거지? 어휴~~답답해.
말을 해, 말을~~~~~~~~~~”
민지의 어이없어하는 말소리가 조용한 카페를 뒤 흔들었다.
카페 알바생과 다른 테이블에 있는 여자가 놀라서 우리를 쳐다보았다
민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더 소리를 높여 말했다
“야~~김민석!!! 너 똑바로 들어~~ 나 지금부터 니 마누라 안 볼거야...그리고 들러리고 뭐고 다 필요없어...설마 조용히 넘어 갈 생각은 꿈도 꾸지마라...”
갑자기 핸드폰을 들더니 급하게 전화를 거는 민지.
“엄마, 망했어...완전 망했다구...그 잘난 엄마의 장남이 글쎄...”
나는 놀란 나머지 바로 자리에 서 일어서 민지의 핸드폰을 빼앗듯이 가져와 종료 버튼을 마구마구 눌렀다
“이게 돌았나? 미친거 아냐? 너 왜 그래? 잘 알지도 못하고... ”
민지는 잠시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 보았다.
“난 처음부터 오빠 결혼 반대했거든...이럴줄 알았다니까...꼴 좋다.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바람을 펴? 아놔~~어이가 없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페를 나왔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민지의 미끼에 걸려 들었다.
분명 엄마에게 알릴 게 뻔한데...
오히려 어제 그 일을 당했을 때 보다 지금이 더 앞이 캄캄하다.
무조건 민지의 입을 막아야 한다. 아님 다음을 나도 장담할 수 없다.
“설마 내가 조용히 넘어 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마~.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 할거니까.
오히려 잘 됐네...이 참에 확 이혼하고 정리해. 갈게 흥!!”
민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차를 타고 떠났다.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생각도 나질 않는다.
머리가 멍해졌다. 발이 떨어 지질 않는다. 한참을 카페 앞에서 서 있었다
그때 카톡이 울렸다
<무조건 아웃이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해하려고 해도 용서가 안돼.
아웃,아웃,아웃.....>
<니가 못 하면 내가 앞장서서 끝낼거야.
각오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참고 이해하며 살았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나쁜년>
민지의 카톡은 끊이질 않고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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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야...미안해>
나의 답톡에 더 이상 톡은 오질 않았다.
<7부에서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