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Jul 30. 2021

내 삶을 이루는 독서

무언가 바뀌는 순간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고만고만하던 나의 인생은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마치 특별한 의식이라도 치른 듯 파란만장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찌어찌하다 중학생 때 최초로 읽게 된 책이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였다. 그냥 국어 시간에 독서를 해야 해서 나름 있어 보이려고 고른 책이었는데 나는 이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독서가 삶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자극을 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달과 6펜스’는 황홀한 영감에 사로잡힌 비운의 어느 천재 화가의 이야기이다. 그의 삶에는 천재적인 영감과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타들어가는 열망만이 존재했다. '현실'을 상징하는 '6펜스'의 돈 따위는 그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정말 별 고집스러운 사람이 다 있네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 고상한 삶의 모습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비록 그의 천재성이 현실 세계로부터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끝내 조용히 사라져 갔다 해도 그가 남긴 특이하고도 의미 있는 행적들을 뒤쫓다 보니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그런 종류의 경외심을 안고 나는 짜릿함을 선사하는 고전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1 때인지 중2 때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점에 나는 책장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책을 꺼내어 읽고야 말았다. 여태껏 읽었던 책들을 포함해 내가 만났던 그 누구와 비교해 보아도 이 책에서 얻었던 만큼의 자극을 받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데미안’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구절을 알고 있는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에게는 이 책을 읽던 순간이 바로 내가 기존에 있던 삶을 의식하고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 순간일 것이다.


  왜 이 독서 경험을 이처럼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마땅한 대답 거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를 통한 깨달음이 으레 그렇듯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자극하는 수많은 생각들에 대처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그냥 놔두었더니 그 생각은 점점 다양한 형태로 불어나기 시작했고 나는 표현 그대로 수만 가지 잡다한 생각들과 답도 없는 철학적 질문에 빠져 살게 되었다.


  나는 책 때문에 나를 둘러싼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데미안’을 읽게 된 계기는 누가 나더러 이 책을 읽고 생각한 점을 서술하라고 했기 때문도 아니고 이 책을 통해 뭔가를 깨달으려고 하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책을 읽으면서 드는 묘한 느낌을 놓치지 않았고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따라 그대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책이 나에게 등장인물들의 삶과 삶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여줄 때, 내 삶과 태도 역시 책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책을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책을 통해 마음의 눈으로 나의 삶을 성찰하게 되었고 책이 주는 전율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책의 내용은 곧 내 삶의 내용이 되었다. 내가 마치 책 속의 그 주인공인 것처럼 그들이 가진 인상적은 태도로 내 삶을 살아나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남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