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조여 오는 티셔츠를 벗어버렸다.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다. 평소 신지 않던 신발을 신는 날은 혹시나 가 역시나, 사단이 나고야 만다. 잘못 끼운 오늘의 첫 단추는 바로 그것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하나부터 끝까지 맞는 게 없는 오늘 오로지 지켜야 할 약속 하나로 지친 몸을 이끌었다. 발엔 물집이 잡혔는지, 아니어도 발갛게 부어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일 나간 주말 무거워진 어깨는 여직 가실 줄 모르고 약으로 달래 논 진통이 일어나는 듯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앉아만 있을 땐 이따금 어릴 적을 떠올린다.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는 내 머리가 가끔은 원망스러울 적도 있다. 유치원에 등원한 첫날 엄마가 보고 싶어 하루 종일을 울었다. 날 달래 주던 친구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나오질 않았다. 날 잊고 놀던 친구를 창문 너머 빼꼼히 보고는 처음으로 다른 이에겐 내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랄까 그 감정이 날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눈물만 짜내던 내가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마당에 나와 날 안아 올리며 반겨줬다. 잘 놀았냐는 물음에 응 이라고 거짓으로 대답하길 한동안 반복이었다. 그땐 내가 그렇게 대답하면 엄마는 영영 모를 줄 알았더랬다.
일 년 후 동생과 함께 다녔다. 나와 동생은 꽤 성장할 무렵까지도 늘 함께였다. 나보다 더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었던 동생은 밥을 먹을 때 조차도 식판을 들고 내 교실에 올라왔다. 심지어 꼭 책상 밑에 들어가서 먹었다. 나는 동생을 따라 책상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식사를 했다.
언니가 왔다 간 다음 날은 언니가 베고 잤던 베개를 끌어안고 잤다. 언니 냄새가 난다며. 나는 언니가 좋았다. 엄마놀이를 할 때에도 언니 역할은 내 차지였다. 사실 인기 역할이 아닌 언니를 하겠다는 애는 나 밖에 없기도 했다. 귀여운 시절이었다.
어쩌면 난 어릴 때 지금보다 타인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컸는지 모른다. 물론 가족의 경우라 다를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놀랍도록 남에게 관심이 없다.
항상 지난 일기를 올리고는 한다. 나의 게으름을 보여준다. 이것 또한 벌써 나흘 전의 이야기, 아 이제 닷새로 접어든다. 언제나 글을 적다 보면 내 문체가 그들 어느 곳에나 보인다. 낮에 마구잡이로 적어 내린 곳에도 그러했다.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다. 그 누가 봐도 나의 것인.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