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봐도 괜찮아요
MBTI 상으로 칭하는 ISFJ는 “용감한 수호자” 로 불리며 대표적인 성향으로는 원칙주의자, 눈치를 자주 봄, 통화보단 카톡, 챙겨주는 거 좋아함, 게으른 완벽주의자, 배려심 최고, 공감을 잘함, 생각이 많음,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음, 참을성 만렙, 꼼꼼함, 신중함, 호기심이 많음, 상상력이 풍부함, 다수보다는 소수, 집순이, 내 사람 덕후, 김칫국 마심, 계획형 인간, 나서는 건 싫지만 관심받는 건 좋아함 등이 있다. 많은 성향들 중에 내 사람 덕후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타인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타인은 아니다. 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내 사람과 내 사람이 아닌 경계의 틀이 아주 정확한 사람이다. 내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내가 손해 보더라도 그게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종종은 그 틀 안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무례한 행동이 지속되는 경우 여러 번 참고 또 참는다. 하지만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지나면 나에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남편은 내 성향 중 이 부분을 가장 어려워한다. 내가 아예 손절해 버리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다시는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에게 "어려운 거 알아 그래도 품어야 해 우리가 할 일이 그거야 목회자 부부잖아", "당신은 진짜 무서운 사람 같아", "사모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라고 말한다.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나는 "나는 참을 만큼 참았어", "사모지만 나도 사람이야", "나는 잘못 없어 어디까지 참아?"로 반격한다. 나의 이 성향으로 신혼 초 여러 번의 갈등이 있었다. 포용력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포용력인가? 나는 포용력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손절하고 나면 포용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게 너무 억울하다. 나는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스타일은 맞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한 인간을 손절하기까지 얼마나 참았는지, 참으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은 남편에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힘들 때 위로도 해주고 공감도 해주고 너무 잘 들어주는 사람이지만, 내가 한 인간을 손절해 버릴 때 남편은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남편은 "서로 윈윈", "좋은 게 좋은 것" 마인드가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해를 끼쳐도 대부분은 스스로 삼키고 없던 일처럼 생각해 버린다. 웬만하면 얼굴로 절대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이다.(우리 엄마가 사위로 점찍은 이유 중 하나)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과 만나서 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육체는 에너지가 고갈되지만 정신은 충전이 되기도 한다. 약속을 잡고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이다. 전자의 생각이 들 때는 만남의 시간이 유익하지 못하다고 느껴, 만나고 온 시간조차 아깝다고 느껴질 때다. 보통은 본인의 삶이나 추구하는 취향을 대화주제로 삼지만 그렇지 않고 모든 대화의 주제가 제삼자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대화를 주도하며 그런 주제가 아니면 할 말이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일 때, 이런 시간 속에서 나는 마음이 몹시 어렵다. 반대로 후자의 생각이 들 때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지, 서로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 어떤 행복이 있었는지 이러한 주제들로 대화가 진행될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 이 두 가지 요소의 차이점은 전자는 대화도중에 웃는 얼굴은 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고, 후자는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삶에서 후자와 같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글을 쓰는 시점 6명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전자가 대화주제인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 자체가 악하다고 볼 수는 없다. 분명 내 앞에서 비치는 장점도 있기에 하나의 면모만 보고 판단하여 타인의 인격을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내가 인간관계를 끊어내고 나면 내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다. 함께한 시간의 향수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향수를 통해 기억되는 공간, 계절, 이야기, 분위기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하지만 향수로 그 사람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 쯤엔 그리움의 단계를 지나 단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인 것 같다. 나와 만남을 이어가고 관계를 이어가는 모든 이들이 유의미한 관계였으면 좋겠다. 내 사람 틀에 있는 이와 없는이, 나에게 의미도 다르고 존재감도 다르겠지만 그래도 차별 없이 존중해야 한다. 그 안에는 인격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고 배려심이 많은 잇프제에게는 쉬운 것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쉽고 어려운 것은 쳐다보기 싫을 정도로 어렵지만 분명 이 글을 마치고 또 누군가를 챙기고 있을 것이고, 연락하고 있을 것이다.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성도들에게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하셨다. 언젠가 성도들은 떠나가며 배신을 하는 순간도 오기마련이라고. 그 후에 남는 건 상처뿐이니 적당한 선을 유지하라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내 성향상으로 이 말을 지켜가며 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배신당해 봤고 상처도 받아 봤지만 다시 누군가를 챙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가끔은 숙명이라고 여겨버릴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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