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PM 이직을 결심하기까지
때는 바야흐로, 졸업 직전 학기를 보내던 대학생 25살 시절..
졸업을 미루지 않고, 경력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물색하다가
벤처경영 전공 수업에서 만난 친구가 좋은 기회를 제안했다.
대표:
종이노트를 팔던 우리 회사가 최근에 피벗해서 굿노트 속지를 판매하는 플랫폼이 되었는데 와서 일해보지 않을래? 나도 아직 학부생이라, 학기 병행하면서 일해도 돼.
실질적인 실무 경험과 졸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챙기는 선택이라 나에게는 why not이었다. 나 빼고 4명뿐인 작은 팀에 합류하여 일주일에 2~3일은 회사에 일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시절이었다. 궁금한 것 투성이에, 하고 싶은 것 투성이라서 내가 달려야 그걸 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그 자율성이 나에게는 너무 큰 즐거움이었다.
애초에 졸업할 때까지만 다니다가 나올 작정으로 합류했는데, 다녀보니 너무 재밌어서 1년, 2년 지나버리게 되었다(나오려고 할 때마다 친구가 너무 적절한 당근을 잘 줘서 계속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내 사업'에 대한 욕망이 점점 커졌다. 5번 멤버로 합류하여 이 회사의 초기 과정을 함께했는데 나에게 남은 것은 약간의 스톡옵션과 월급뿐이었으니까. 내가 진심이었던 만큼 박탈감도 더 컸다.
그동안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날이 갈수록 성과가 쌓이고 있었고 위드코로나부터 투자는 얼어붙었지만 우리는 안정적인 캐시플로우를 만들며 안정적으로 후속투자도 만들어냈다. 심지어 후속투자해 준 회사가 글로벌 1위 필기앱이라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장 기회도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면만 보다가는 정말 퇴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이직 자리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퇴사했다. 이렇게라도 강제종료를 하지 않으면 나는 또 계속 재밌어하며 일할 사람이니까.
단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지난날의 나에게 휴식은 곧 죽음이었기에, 공부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교외 활동을 챙겨서 했고, 휴학했을 때는 쉬기는커녕 학교 다니면서는 하지 못하는 인턴을 하며 진로를 탐색했다. 코로나 시기 학업량이 가벼워지자 새로운 커리어 탐색을 위해 전략학회를 시작했다. 9개월을 평균 4시간을 자면서 학회 활동을 마쳤다. 학회를 마친 바로 다음날 다음 팀에 입사했다.
이런 나에게 퇴사는 처음으로 내 인생에 쉼표를 선사했다. 달리지 않고 멈추니 생겨나는 질문들이 있었다.
어디를 향해 달려온 거니?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 거니?
달리느라 급급했던 나는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타인을 향한 인정 욕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진짜 생각 말이다.
그전까지 실패해 본 기억이 크게 없다. 열심히 하면 그만큼 결과가 따랐고, 남들이 봤을 때는 승승장구하는 코스를 밟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성공가도를 달리는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가난했다. 내가 달리는 이유가 내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졸업 직전 진행했던 심리상담을 통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이끌어온 동기가 '인정 욕구'였음을 깨달았다. 유년기에 충족되지 못해서 생긴 결핍이 현재 나에게도 영향을 줬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항상 타인을 주체로 두고 생각했다. "내 결과를 내 주변 사람들이 무시하면 어떡하지", "저들보다 내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이미 잘 살아오고 있어도 나보다 더 역량이 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를 깎아내렸다. 인정욕구와 열등감은 내가 이렇게까지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었다.
내 일상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졌던 어떤 시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기 전에 "남들보다 더 잘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할까? 아닐 것 같았다. 나는 "내 사람들에게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죽지 못한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할 것 같았다.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이 사라졌을 때 명백히 보이는 경향이 있으니, 삶의 가치 역시 삶을 제거하는 죽음을 통해 명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삶의 목표는 상대적인 성공이 아니라 '내 사람'에 있었다. 그것을 26세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발견하자, peer pressure와 인정욕구는 자연히 나에게 후순위로 밀려났다. 내 선택은 다른 레이스가 아니라 내 레이스 안에서 평가해야 한다. 내 다음 선택은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데에 도움이 되면 된다.
최근에 발견한 스크린샷이다. 어떤 선택이든 내 인생 안에서 두고 생각하고 판단하면 된다. 그러면 불안으로 일을 그르칠 일이 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키워드는 두 개다. (1) 안정성 (2) 현금흐름.
돈을 많이 벌되, 이후에도 그 현금흐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당장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사업을 하는 것은 안정성 조건을 위반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을 유의미하다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집단에 있어야 내 몸값을 유의미하게 올릴 수 있다. 지금까지는 스타트업 피엠이 최선의 선택이다(실제로 성향도 잘 맞는 편이다)
사람마다 뷰가 다르겠지만 기술창업 조직의 PM이라는 직무의 전망을 좋게 본다(이렇게 생각한 근거가 있으나 좀 길어서 이 글에서 정리하진 않겠다). 내 기준으로는 안정성 조건을 수월하게 충족한다.
근데 근로소득으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사업소득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업은 내가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이기도 하다. 피엠을 하면서 자본을 모으고, 연차와 경험을 쌓은 다음 가장 매력적인 연차에 고용시장을 벗어나 사업을 하려고 한다. 사업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채용시장에 다시 들어가 월급쟁이만큼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실패 리스크를 '가장 매력적인 연차'를 통해 분산하려고 한다.
*요즘은 Product Owner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래도 PM이라는 단어가 더 폭넓게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PM을 주로 사용하기로 함
이제 다음편에는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논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