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e는 꿈 없이 살았었다.
조이는 꿈이 없었던 사람이다. 흔히들 모두가 꿈을 꾸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뭐가 되고 싶니?” 하면 별로 하고 싶은 걸 떠올리지 못해, 옆 친구가 말하는 “선생님이요”, “간호사요”를 우물쭈물 따라 말하곤 했다.
많은 시간을 잘 보냈지만 그게 그리 즐겁지는 않았었다.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것들을 바라고, 바라면 바라는 대로 얼핏 이루고 마는, 무난한 인생을 살았다.
꿈이 없는 사람이 으레 그럴법하게 취업이 잘 되는 대학교를 골라 들어가 정말 별다른 걱정 없이 취업했다. 그것도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5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공직에 있었다고 했다.
꿈이 없어서 그렇게 안정된 곳을 찾아 들어가 놓고 왜 그리 불행했던지. 좋은 허울들을 쓴 채 속으로 쓰게 웃고 있었다. 아니, 웃지 못했던 날에는 그저 속이 쓰기만 했다.
우리는 실패가 두려워 꿈을 좇지 않는다. 소중한 꿈을 망칠까 두려운 마음에 무난하고 안정적인 삶을 쫓는 거다. 하지만 <트루먼 쇼> 영화로 유명한 배우 짐 캐리는 어느 연설에서 말했다.
우리는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심지어 실패하고 만다.
조이는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날마다 실패하고 있었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의미 없는 인생에서 재미나 쫓으며 살았던 거였다.
하지만 그 재미란 게 음주나 호캉스로는 잠깐 채워질 뿐 인생을 채울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오랜 시간 지나 깨달았다고 했다. 실패할 것 없다고, 더는 시련이 없으리라 생각한 직장에서 조이는 계속되는 좌절과 허망함에 시달렸다.
짐 캐리는 말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 부자가 되어보고 유명해져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게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테니까요.”
조이는 공직에 있었지만, 돈벌이가 괜찮았다고 했다. 같이 일하던 상사의 연봉이 1억쯤이었다던가?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안정적인 삶도, 돈을 꽤 버는 삶도, 진정으로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가 없다면 그저 개살구에 불과하단 사실을.
그러다 조이는 안정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게 된다. 기회는 우연히 은밀하게 찾아왔다. 사랑을 목적으로 살던 날들의 회한으로 사랑에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사랑을 인생에 다시 들이게 되면서.
그때 알았다고 했다. 꿈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조이에게 꿈이 생길 뻔도 했었다는 사실을. 다만 그것을 이루기엔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걸 수없이 보고 들었었다. 풍족하지 못한 꿈을 쫓고 싶지 않았다. 밥 먹여주지 못할 꿈이라면 꾸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꿈은 한 번 자리 잡아 보지도 못하고 저 멀리 도망가 버렸던 거였다.
그렇게 알을 깨고 조이는 목표 하나와 함께 호주에 갔다. 다른 부수적인 목표도 많았지만, 주된 목표는 그거였다.
다정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 목표를 보자니 우선 눈앞에 펼쳐진 먹고사니즘이 걱정되어 작정하면 돈은 좀 만질 수 있다는 호주로 간 거다. 그때는 그랬다고 했다. 마음속에 다정한 세상이란 목표가 있었지만, 눈앞에 닥친 먹고사는 일이 더 고민이었다. 돈 때문에 꿈조차 꾸지 못했던 사람이니 알을 깨고 나왔다고 돈 걱정을 한숨에 안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이는 호주에서 한 할머니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는 사랑으로 많은 사람을 품을 줄 알았다. 초로에 접어든 친구를 보며 삶을 배웠다. 인생은 정말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인생은 정말 별것 없지만 동시에 굉장한 거라는 걸 매일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그렇게 모든 감각으로 느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됐단다. 정말 신기하게도 찾아오지 못하고 튕겨 나갔던 그 꿈이 다시 찾아왔더랬다. 가끔은 어안이 벙벙해서 볼을 꼬집곤 했다. 이게 진짜 제 인생이 맞나 싶어 얼떨떨했단다.
조이는 이제 완전히 다정을 목적으로 산다. 하는 말은 날카롭고, 가끔은 신경을 건드렸으나 결국 조이가 원하는 건 그거였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조이는 어쩌면 흔한 것이 아니라 꿈이 찾아오는 데 오래 걸렸나 보다 했다. 세상을 많이 겪고, 무너져 보고, 울어도 보고, 견디고, 버티고, 이겨낸 후에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 이제야 왔나 보다 했다. 그러니까 더 이르게 꿈이 찾아올 수 없는 거였다는 걸 알았다.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른 꽃이라고 하던가? 조이에게는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척박한 그 땅에서 뿌리내릴 수 없는 씨앗이 심겨 있었다. 다행히 비가 많이 온 후라 새싹이 움틀 수 있던 거였다.
이제 겨우 돋아나고 있는 조이의 꿈은 그렇다.
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꿈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진짜 멋진 인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꼭 알려주는 것.
스스로가 품고 있는 씨앗의 발아는 모두가 다른 때를 가지고 움트고 만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
말은 근사하지만, 속 안에 있는 목적은 그리 근사하지 않았다. 조이는 스스로를 위해 다정을 꿈꿨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해서 먼저 다정하게 살겠다 선포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안는 기분으로 모든 사람을 끌어안은 채 그들의 행복을 빈다.
하지만 결국엔 그들을 끌어안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아무 일면식 없는,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대일지라도 행복을 빌고 있다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