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3
인천국제공항에서의 식사는 언제나 순두부찌개다. 나는 그렇다. 나라 바깥으로 갈 때 뜨끈하고 빨간 순두부로 속을 데우면서 한국인의 피를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한달까. 그래, 어떤 다짐이 필요하다. 이제 나의 삶이 가본 적도 없는 낯선 외국에서 이어지게 될 테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나로 살아남게 될 것인가?
당분간 먹을 일 없는 한식이라 여기며 순두부를 먹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기내식으로 김치볶음밥을 준다. 외항사인데도 출발지가 인천이라 한식을 내놓는가 보다. 덕분에 한국의 느낌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듯 안심이 된다.
여행도 아니라 살기 위해 가는 거면서 급하게 비행기를 끊느라 국적기는 택도 없었다. 베트남항공을 이용하게 된 나는 베트남의 경제 수도 호찌민에 정차했다.
경유시간은 16시간, 잠깐 나갔다 오기에 적절했다. 그래도 외출인 만큼 세수하고 선크림은 발라야 할 것 같아 화장실을 찾았는데 가는 길 바깥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오... 비행기를 다시 타야 하는데 비가 오는 거리를 거닐다 오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잠깐 스친다.
걱정은 잠깐, 짐을 맡기고 버스 승강장에 서니 하늘이 말끔하다. 환전한 돈으로 버스에 타서 재차 버스 안내 아주머니께 목적지를 확인했다. 베트남에는 아직 버스 안에 안내하시는 분이 있다. 목적지는 바로 핑크성당. 덕분에 핑크 성당 가까운 곳에서 하차했다.
구글맵을 켜보니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다. 어쩐지 마음이 그쪽으로 끌린다. 핑크성당은 우선 제쳐두고 공원으로 간다.
공원은 평화로웠다. 제각기 무리 지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틱톡을 찍는 듯 함께 춤을 췄다. 주말의 공원이었다.
공원에서 한참 평화를 만끽하다 보니 핑크성당에 가기엔 애매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마사지샵에 예약이 잡혀있기 때문. 마사지샵으로 걸어가며 콩카페에 들른다. 코코넛 커피로 목을 축이며 근처 ATM에서 혹시 모르니 현금을 조금 더 마련해서 걷는다. 비가 언제 왔었냐는 듯 하늘이 파랗다.
더운 나라에서 바쁜 걸음으로 움직이는 게 너무 익숙해서 웃음이 났다. 일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걷는 내내 오토바이 매연이 코끝을 찔렀다는 점이다. 매캐함과는 또 다르게 더운 나라의 길쭉길쭉 뻗은 큰 나무들은 나를 설레게 한다.
어딘가 CCTV로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발 닿는 자국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공원에서 마사지샵까지, 산책이 수월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연신 웃음이 난다.
공항에서 잠깐 나와 마사지를 받길 정말 잘했다. 비행동안 뭉쳐있던 근육을 풀기에도 제격이었고, 샤워까지 할 수 있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또 비가 온다. 비가 조금 오래 쏟아진다.
드디어 시드니로 간다. 하루에 여행만 가득한 기분이라 이상하다. 내가 지금 어딘가로 일하러 가는 게 맞나?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해외에 가는 길이 맞는 건가? 그렇다기엔 즐거운 일만이 가득한 게 묘하다.
이게 나의 호주 이야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