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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배 Zoe Aug 11. 2023

여자지만 해양경찰을 제대했습니다

나는 나라가 군면제를 시켜준 사람이다. 그렇다. 내게는 태어날 때부터 군에 대한 의무가 없었다.


해양경찰은 공무원이고 공무원을 그만두는 건 의원면직이라고 한다.
원에 의해서 직을 면하다.


면직 전, 함께 근무했던 직원 중엔 정년을 코앞에 두신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내가 일을 그만둘 때 "어이, 제대 축하 허네~" 같은 인사말을 건넸다. 그 옛날의 해양경찰은 군과 큰 차이가 없었고 군에서 문화도 많이 들여왔기에 그런 관습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근무하신 분들만이 간직한 추억의 말처럼 들렸다.


항상 무언가에 찔린 듯 뜨끔해서 먼저 고백하는 말이 하나 있다. 나는 엄연히 말하자면 경찰은 아니었다. 해양경찰 조직에는 경찰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이 있다. 바다에 기름이 떠다니면 그 일을 처리하러 다닌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를 떠올리면 쉬울 거다. 갯바위를 닦는 일은 지자체에서 하고, 바다 위의 기름을 떠내는 게 해양경찰의 임무다.


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법이기에,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했다. 게다가 배라는 환경은 낮과 밤이 그냥 하나다. 밤에 일하면 어디든 낮보다 벌이가 조금 괜찮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이었지만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생활을 누렸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부족함이 없었어야 맞았다. 하지만 그런 풍족함 속에서도 누군가는 결핍을 느꼈다. 고된 일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때때로 서로 가시를 세우고 세차게 찔러댔다. 고슴도치들 사이에 끼어있는 기분이 들었달까?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면서 언제나 분위기는 변화했다. 하지만 한동안 지켜본 그 결핍이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풍족해 보이는 사람도 부족하게 만드는 그 결핍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내가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3년 10개월의 공직 생활을 끝내고 나왔다. 아주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하고도 2년을 넘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급여가 주는 안정과, 신분이 주는 편안함의 그늘 안에서 강렬한 세상 밖으로 나가기는 두려웠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내게 해양경찰이라는 이름은 마치 족쇄 같았다. 공무원 신분으로 받는 제약이 정말 가혹했다.


그리고 족쇄를 풀어낸 지금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가뿐함이 나를 더 기쁘게 한다. 무겁게 걷던 때가 있었다는 게 이제는 까마득하다. 가뿐하게 걸으며 세상을 탐험하려 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지만 그늘 안에서 본 세상이 얼마나 반짝거렸던지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또 걸어간다. 나아온 세상의 아래서 빛을 받으며 찬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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