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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jin Mar 25. 2019

침묵을 서비스합니다

현대에 가장 찾아보기 힘든 활동 중 하나가 침묵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계속해서 스마트폰의 알림이 주의를 잡아끈다. 주변 환경을 둘러봐도 자동차 소음, 층간 소음 등 우리의 일상은 항상 소음과 소리에 노출돼 있다. 조용할 틈이 없다.


외부적 요인만 침묵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고요한 상황을 참지 못한다. 대표적인 게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지만, 잠이 안 올 때나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 많이 찾는 콘텐츠 중 하나다.


마케팅에선 이를 활용해 치킨 튀기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소리, 사각사각 연필 소리, 타닥타닥 캔들 타는 소리, 그것도 아니면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소리 등 제품과 연관된 콘텐츠를 만들어서 홍보한다. 항상 자극적이고 시청자를 압도하는 영상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ASMR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서는 일종의 휴식처럼 느낀다. 하지만 ASMR도 자극이다. ASMR 콘텐츠를 보고 듣는 동안 뇌가 쉬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다 보니 최근 미국서 가장 급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명상이다.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고요함을 찾는 사람이 증가했다. 2018년 앱 트렌드로 애플이 꼽은 키워드가 셀프 케어일 정도. 평온함, 고요함, 안정감은 사고파는 상품이 되고 있다. 사무공간이나 공항, 터미널 등과 같은 공공장소에 명상 파드를 설치한다든지, 점심시간과 같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바쁜 직장인도 명상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게 버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Inhere meditation pod at Uncommon - 공유 오피스에 설치한 명상 파드

https://youtu.be/YXAT5EWB9sM

Be Time Practice - 버스에서 진행하는 명상 수업
Be Time Practice


오늘 소개할 사례는 공식 서비스화한 앱이나 프로그램은 아니고 침묵을 하나의 요소로 활용한 아이디어들이다. 서비스 디자인 과정에 침묵을 도입했다.


먼저 Silent Meditation은 침묵을 서비스하는 레코드다. 평소 명상애호가인 창작자가 명상 관련 레코드를 샀다가 크게 실망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었다. 레코드판 안에 아무 소리도 담지 않았기 때문에, 침묵이라는 개념을 파는 것에 가깝다. http://kck.st/2Sejyjv

명상애호가로서 명상 레코드라면 좀더 명상을 잘하게끔 도와줘야 하는데 불필요한 설명, 딱딱한 가이드, 집중을 방해하는 소리 등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진짜 명상애호가들은 부차적인 설명보다 침묵을 원할 거로 생각해, 침묵을 서비스하는 레코드를 고안한 것. 


Silent Meditation


12인치짜리 투명 바이닐 레코드가 약 20분간 짧은 명상을 지원한다. 일종의 타이머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레코드 소리로 고요하고 평온한 공간을 생성하는 것이다. 기능적으로만 접근한다면 명상할 시간만큼 스마트폰 알림을 맞추면 그만이지만, 레코드판에 레코드를 올리고 재생하는 과정을 수련의 일부로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명상 경험을 만든다. 게다가 지직거리는 레코드 소리는 일종의 백색소음 같은 효과를 낸다.


침묵을 아날로그의 대표주자인 레코드와 결합했다는 점. 명상 수련 과정에 레코드를 재생하는 과정을 통합했다는 점 등이 인상 깊다. 빠르고 신나는 상품이 증가하는 만큼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상품도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침묵을 아날로그의 대표주자인 레코드와 결합했다는 점. 명상 수련 과정에 레코드를 재생하는 과정을 통합했다는 점 등이 인상 깊다. 빠르고 신나는 상품이 증가하는 만큼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상품도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Silent Drive Thru, 핀란드 헬싱키의 버거킹 매장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매장의 콘셉트는 침묵이다. 이 매장에선 말을 하지 않는다.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은 물론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업원도.


Silent Drive Thru


음식을 받아서 식사까지 마치고 가는 일반 공간이었다면 더 독특했겠지만, 이곳은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다. 침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빠르고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앱 서비스에 보다 방점이 찍혀있다. 그럼에도 매장의 콘셉트인 침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수한 국가 중에 핀란드에 세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다는 통념이 있다. 즉 핀란드인은 내성적이라 낯선 이와 이야기하길 꺼릴 것이라는 편견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낸 것이다.


신속하고 빠른 것이 최고 효용인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침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더 재밌게 호소한다.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을 중시해야 하는 때가 있지만, 편리함을 주된 가치일 때는 이처럼 과감한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시도해볼 만하다.


침묵은 오래된 소재긴 하지만 현대인에겐 낯선 소재다. 다른 브랜드가 모두 시끄럽게 자기를 어필하는 가운데 침묵이라는 키워드는 역설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포인트를 발견하고 이를 서비스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등의 영역에서 활용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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