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얼마입니까?
더는 SNS가 인생의 낭비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요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 SNS 포스팅을 올린다. 강박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 있는지 등을 공유한다. SNS가 행위의 가치판단을 결정짓기도 한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용어다. 맛없는 집이 그냥저냥, 때로는 ‘대박 집’으로 살아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식의 맛에 돈을 내는 게 아니라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모든 경험에 돈을 낸다.
그렇게 올린 포스팅은 자기 과시일수도, 취향의 전시일수도, 자기 만족일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만연한 현상이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를 찾기 위해 포털이나 미디어의 추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장소 혹은위치나 #먹스타그램, #맛스타그램, #맛집 등의 관련된 해시태그가 달린 포스팅을 보고 갈 곳을 정한다. 포스팅을 올리는 개인에 주목하면 해석은 다양하고 복잡해진다. 그러나 트렌드는 명확하다. 때론 우리에게 무의미하고 공허함을 안겨주던 SNS 포스팅이 매우 구체적인 가치를 띠기 시작했다는 것.
인플루언서는 이런 트렌드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직종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나 미디어를 주축으로 굵직하게 모이던 개인들이 잘게 쪼개지면서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작게 모인다. 그리고 이들은 웬만한 직장인보다 높은 수익을 벌면서 변화한 가치를 증명한다.
SNS가 중심이 되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비전은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3, 1화에 잘 나와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r4p3Fws4VY
이곳에선 가치 판단은 미뤄두고(ㅠㅠ) SNS의 화폐 가치를 인정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미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일상이 됐다.
먼저 너무나 직접적인 사례 하나. 향수 브랜드 Xyrena는 Verified를 출시했다. 향수 디자인과 네이밍에서 알 수 있듯 SNS에서 인증(Verified) 배지를 받은 사람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다. 계정 이름 옆에 파란색 체크 표시가 붙는 인증 배지는 원래는 계정 도용이나 유명인 사칭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주로 공인, 유명인, 글로벌 브랜드 및 기업의 계정 옆에 달려있다. 다른 말로 하면 SNS 영향력을 어느 정도 갖춘 계정이라는 뜻이다.
향수 가격은 우리 돈으로 ₩140,983지만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SNS 인증 절차를 거치기 때문. 원래부터 워터슬라이드 냄새가 나는 향수처럼 독특한 향수를 선보였던 브랜드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변화한 세태를 빠르게 반영했다는 점에서 영감을 준다.
이 사례에선 인증 배지를 하나의 장벽처럼 설정했는데, 수익성과 판매율을 높이려는 측면에서 접근해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더라도 재밌었을 것 같다. 인플루언서들을 집중 공략해 개별 인플루언서마다 유니크한 향을 개발해주고, 그 인플루언서의 팔로워들로부터 구매를 촉진하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어서 좋고, 팔로워들은 욕망의 대상인 인플루언서를 상징하는 향을 구매해서 좋은 구조. SNS의 화폐 가치를 인정한만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욕망의 구조를 활용했더라면 더 파급력이 있었을지도.
다음 사례도 좀 단순하면서 직접적이다. 이탈리아의 일식 레스토랑 This Is Not a Sushi Bar는 돈을 받지 않는다. 물론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에 한해서만.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 무료 시식행사를 진행하곤 하는데 아무 콘셉트 없는 시식보단 이 편이 확실히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팔로워가 1,000명에서 5,000명이면 한 접시, 5,000명 이상 10,000명 이하는 두 접시. 이런 식인데 10만명이 넘으면 모두 무료다. 가게 홍보를 위해 인플루언서를 섭외하거나 고용하곤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인플루언서 명소’를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유입되니 홍보 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보니 팔로워가 많은 것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인플루언서가 아닌 사람의 포스팅이 무가치한 건 아니다. 개별 포스팅이 모여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드니까. 컵라면으로 유명한 닛산이 미국에 설치한 Foodbeast Dream Machine은 이런 세태를 잘 보여준다. 자동판매기(자판기)인데 돈은 안받는다. 이것도 역시 SNS의 포스팅이 화폐가 된다. 자판기 위의 노란 버튼을 누르면 특수한 해시태그가 생성되는데, 인스타그램에 자동판매기와 사진을 찍어 포스팅할 때 이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된다. 그럼 실시간으로 기계가 포스팅을 확인하고 그에 상응하는 컵라면, 비디오 게임, 상품권 등의 보상을 지급한다. 자판기를 이용한 사람들은 자기 인스타그램 포스팅이 화폐가 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경제의 기본이 되는 교환 시스템을 적용함으로써 마케팅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https://www.facebook.com/watch/?v=703962813339569
마지막 사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인스타그램의 화폐 가치를 가장 확실히 보여준다. 여행지에선 사진을 찍느라 바쁘기 마련이다. 좀더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전문가를 고용해 스냅 촬영을 하기도 한다.
Relax We Post. 말 그대로 전문 사진기사를 고용한 것처럼 인스타그램 포스팅은 호텔 측이 담당할 테니 편히 쉬라는 뜻이다. 특이한 점은 사진 전문가가 아니라 인스타그램 전문가, 즉 인플루언서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SNS에 도가 튼 사람들이니 어떻게 하면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를 포착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선망하던 인플루언서가 여행 보조가 돼 준다니, 멋진 사진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든든한 서비스가 되겠다.
https://www.relaxwepost.ch/de/
다르게 보면 SNS 활동이 비즈니스, 서비스화할 정도로 실질적인 가치를 생산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인플루언서가 가진 파급력이 판매율에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SNS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낼 정도다.
사람들의 욕망이 잘게 세분화된 상황에서 SNS는 소비자에게 좀더 마이크로하게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SNS를 둘러싼 이러한 변화를 파악하고 있으면, 마케팅이나 비즈니스 활동을 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