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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18. 2024

여행 중에 머무는 곳

여행지에서 마주한 친절들

일주일 간의 방콕 여행 중에 우리는 한 호텔에서 오래 묵었다. 매일 아침 원하는 메뉴를 말하면 조식을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커피와 차도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침에 일정에 쫓겨 미처 차를 다 마시지 못하는 것을 보고, 호텔 직원분께서는 우리의 음료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주시기 시작했다. 망고 자를 칼을 빌려달라는 작은 부탁에도 그분은 아예 방까지 접시와 수저까지 모든 것을 챙겨다 주셨다. 내가 혼자 묵을 에어비앤비로 옮기려고 체크아웃을 하던 마지막날까지 그분은 택시를 불렀냐며 택시까지 짐을 옮겨다 주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따로 챙겨 드린 팁은 그분에 대한 감사를 담기엔 부족했다.

에어비앤비에 체크인 한 다음날 아침, 나는 입술부터 눈까지 퉁퉁 붓게 만든 망고알러지 때문에 병원을 가야 했다. 혹시 근처에 갈만한 병원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내 말에,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병원 몇 군데를 골라 그중 한 군데에 전화를 걸어 내 상황을 설명하고 보험 서류 발급이 가능한지를 물어봐주었다. 그리고는 혼잡한 도로 상황을 고려하여 택시 부를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외에도, ATM이 어디 있냐느니, 식당을 추천해 줄 수 있냐느니 하는 나의 소소한 질문들에 그분들은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방콕을 떠나는 날 건네받은, 행운을 비는 작은 동전지갑까지.

그들은 모두 나에게 별점 5점의 리뷰를 부탁했고, 나는 그들의 친절에 감사하며 흔쾌히 리뷰를 남겼다. 그리고 그냥 생각해 본다. 나에게 보여준 친절 중에 어디까지가 별점을 위한 친절이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주고 서비스나 재화를 거래하는 게 당연하다. 그때 서비스의 만족도에 친절이 기여하는 바는 크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는 친절이 당연한 태도인 걸까. 특히 이런 여행지를 올 때마다 나는 그냥 문득 궁금해진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이들의 친절은 이들의 노동일까.

처음 발리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예상치 못한 감정에 당황했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나 즐거움보다 외롭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매일같이 부대끼며 지내다가 정말 말이 안 통하는 곳, 내가 완전한 이방인인 곳,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갑자기 덩그러니 떨어진 것이다. 바로 그걸 바라고 내 발로 온 거면서! 내가 낯선 환경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구성원으로 챙겨주었던 사회에서 잠깐 벗어난 기분에 조금 무서워졌다.

그렇게 얼어붙어있는 나에게 말을 걸고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들은 역시 호텔 직원들이다. 한국말로 인사하면서 짐을 들어주고, 방을 안내해 주고, 스몰토크를 별로 안 좋아해서 굳이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빠르게 지나가는 나를 먼저 불러서 인사해 주고, 어떻냐고, 잘 다녀왔냐고 물어봐주고. 이틀 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한 명 한 명 눈에 익을 정도다. 덕분에 오늘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는 길이 유독 기분 좋았다. 그런 그들에게 마주 웃으며 인사하면서, 나는 방콕에서 만났던, 그리고 그 이전에 여행에서 만났던 여러 친절들을 문득 떠올렸다. 그 사람들도 내가 그들을 아꼈던 것처럼 나를 아꼈을까? 단순히 고객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 외에, 나라는 사람이 기분 좋기를 바라주었을까?


이런 질문을 굳이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그냥 그렇다고 답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비록 자본주의 아래에서 만났을지라도, 서로를 대하는 그 기저에는 은은한 인간적인 정이 깔려 있다고. 내가 그랬듯 남들도 그럴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머무는 이곳이 비로소 덜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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