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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20. 2024

서핑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6년 만의 발리 서핑 재도전기

한달살기 장소로 발리를 택한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 가본 여행지 중 또 가고 싶었던 곳은 발리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발리를 처음  것은 입사 직전 2018년 여름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을 기념하는 여행지로 발리를 골랐었다. 발리를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그때의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24살의 나와 30살의 나. 회사에 입사하기 전의 나와 회사에 지쳐버린 나. 그리고, 서핑을 포기했던 나와 이제는 일어설 수 있는 나.


거의 희미한 2018년의 발리 여행의 기억 중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서핑이다. 그건 내 인생 첫 서핑이기도 했다. 인생 첫 서핑을 세계적인 서핑 명소 발리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딱히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서핑을 처음 해보기 전, 나는 서핑이란 그냥 균형만 잘 잡으면 되는 줄 알았다. 파도를 멋지게 타는 그 순간이 서핑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완전 오해였다. 나 같은 초보한테 보드 위에 일어서있는 순간은 아주 찰나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과 체력은 보드를 끌고 바다 한가운데로 갔다가, 다시 꼬라 박히는 데에 썼다. 아주 쌩물고문이었다.


그때 받은 수업은 같이 간 친구와 현지인 강사님께 1:2로 받았다. 파도에 종이인형처럼 나풀대다가 모래에 얼굴을 제대로 처박고 피맛을 본 나는 그대로 포기를 선언했다. 저 못하겠어요, 쉴래요, 너 혼자 해. 그래서 남은 시간은 그 친구와 현지인 강사의 프라이빗 수업이 되었고, 나는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해변에 앉아서 그걸 지켜봤다.


그때의 강렬했던 실패 경험은 내게 오기를 심어주었고, 나는 그 후로 거의 연례행사처럼 강릉에서, 인공서핑장에서 서핑 수업을 들었다. 그때마다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 또 다음을 기약했다.

(작년에 인공서핑장 이후 쓴 글)

이번에 발리행을 결정하면서도 가장 먼저 목표한 것은 서핑이었다. 그래서 서핑초보자들의 성지인 꾸따 비치를 내 여행의 출발지로 삼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제대로 조져버려야겠다는 각오였다.


그렇지만 인생의 진리: 언제나 조져지는 건 나였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서핑을 못할까? 이틀 연속 파도를 맞으면서, 나는 서핑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엔 어떤 것들이 있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서핑을 못하는 게 당연했다는 걸! 나에게는 서핑을 잘하기 위한 마음가짐이 부족했다.


서핑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첫 번째, 침착해야 한다. 보드를 밀치고 일어서는 것을 테이크오프(Take-off)라고 하는데, 테이크오프는 패들링-푸시업-스탠드업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때, 보드를 밀치는 손, 그리고 왼발-오른발로 이어지는 발, 마지막에 팔을 들고 무릎을 구부리면서 무게중심을 낮추는 것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원래 성격이 좀 급한 나는 강사님의 “일어나!”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한 단계 한 단계 제대로 밟기보다는 일단 얼렁뚱땅 일어서려고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자세가 엉망이었고, 무게중심을 못 잡고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몇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느낀 게, 생각보다 파도는 길다. 내가 보드 위에서 충분히 자세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차분히 심호흡을 하고, 절대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하자는 마음으로 보드를 밀치고, 왼발, 오른발, 그 뒤에 정면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자 뒤이은 파도가 힘을 실어주며 매끄럽게 미끄러질 수 있었다.


두 번째, 시선은 끝까지 정면을 바라봐야 한다. 불안한 마음에 이미 디뎌버린 발을 보거나,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대로 고꾸라진다. 앞단계들을 내가 잘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고 바꿀 수도 없다. 이 시점부터는 그냥 앞만 보고 가야 한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도 어쩔 수 없다. 다시 하면 되니까, 괜찮다.


세 번째, 적절하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언젠가 한 친구가 자기 이상형이 운전과 서핑을 잘하는 여자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냥 “아 내가 서핑은 못해서 다행이다ㅎ”하고 말았었는데, 그 말의 의미를 문득 이해하게 되었다.


운전을 잘하는 것과 서핑을 잘하는 것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타이밍을 잘 보고 과감하게 선택하는 능력이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도로에서 거슬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운전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이유는 끼어들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이건 태생적 대범함도 있지만 서울의 할렘가 신림에서 랫동안 치고박으며 어쩔 수 없이 체득한 실력이다. 그런데 나는 왜 서핑에서는 왜 테이크오프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망설이게 될까? 그 이유도 명확하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림의 복잡한 도로같은 환경에 강제로 내던져져야 할 상황이 없었고, 실패가 무서웠던 나는 내가 파도의 타이밍을 깨우칠 수 있을 정도로 도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전히 강사님의 “일어나!”라는 말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타이밍을 보지 못한다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하다 보면 늘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처음 두 번 심하게 고꾸라져서 다소 의기소침해진 나에게 강사님이 말하셨다.

“괜찮아, 우리에게 남은 파도는 많고, 분명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렇게 매 파도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 파도에서 나는 보드에 앉아서 안전하게 해변에 착지하는 것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강사님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완벽한 선생님”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나를 향해 강사님은 내가 조금씩 늘 줄 알았다고 격려해 주셨다. 다음에는 패들링을 마스터해서 Next level을 노려보자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 저는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올해 서핑은 이제 끝이에요.


서핑으로 인생을 배운다는 건 참 촌스럽고 진부하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내 성격적 한계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성급하고, 불안해하고, 우유부단한 나에게 서핑은 애초에 상극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하다 보면 이렇게 깨닫고 고치려고 노력할 수도 있으니까, 그걸 믿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계속 서핑을 도전했나 보다. 2018년의 나는 2시간 수업도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2024년의 나는 이틀 연속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성공해 냈다. 그러니 또 언젠가의 나는 더 잘할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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