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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Apr 19. 2024

나는 왜 나 자신에게 유독 야박하게 굴었을까

나를 괴롭히던 조각들

모든 의무와 스트레스를 두고 떠나온 발리에서, 단 하나 벗어두고 오지 못한 게 있었다. 이번 주 내내 나를 스트레스받게 만든 것, 바로 매주 금요일 듣고 있는 글쓰기 수업 과제가 그것이다.

막바지에 접어드는 수업에서는 세 차례의 미니픽션 과제를 끝내고 최종 과제인 10장짜리 단편소설을 쓸 차례가 되었다. 합평 순서는 제비 뽑기로 뽑았는데, 누군가는 재수 없게 미니픽션 과제 이후 2주 만에 바로 단편을 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재수 없는 사람은 내가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2주는 충분히 여유로운 2주가 아니었다. 방콕에서의 일주일, 발리에서의 일주일이었다. 내가 그 2주 동안 단편 한 편을 쓸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일정을 바꿔달라고 할지 엄청 고민하다가, 그냥 틈틈이 열심히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결정한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다른 사람들도 다 최대한 늦은 순서를 원했고, 나는 과제를 급하게 대충 해내는데 익숙했고, 매도 빨리 낫는 편이 나을 테니 차라리 빨리 해치우고 남은 시간 맘 편히 지내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정해진 제비 뽑기의 결과를 나를 위해 바꿔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도 다 사정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공정하게 제비 뽑기를 한 거니까. 그냥 조금 덜 자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았다. 방콕에서, 발리에서 내 머릿속은 써야 할 소설 과제보다 주어진 경험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생각들로 시끌벅적했다. 당장의 생생한 경험들을 뒤로하고 가상의 이야기를 억지로 지어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대충 또 에세이를 소설처럼 각색해서 쓸까? 그렇지만 그건 에세이로 담아내야 할 내 생각과 소설로써 써내야 할 내 과제 둘 다 망치는 짓이었다.

그래서 발리에 와서 이틀 동안 나는 카페에, 호텔에 처박혀서 글을 쓰려고 노력하며 보냈다. 글을 쓴 게 아니라 쓰려고 노력하며 보낸 시간들이었다. 마음에서 안 우러나오는데 꾸역꾸역 짜낸 문장들은 내가 봐도 매력이 없었다. 속시원히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글을 쓰지도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결국 과제 제출 기한을 넘긴 새벽 3시까지 쓰면서, 다음날 아침에 예약해 뒀던 서핑 수업까지 취소할지 고민했다. 그 순간, 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급격한 회의감이 들었다. 지금 나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단 서핑은 가기로 했다. 파도를 맞으며 머릿속을 좀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 위에 떠있다가, 돌아와서 내가 올린 것은 형편없는 과제 대신 짧은 사과문이었다. 정말 제출하고 싶었는데, 이러이러한 해외여행 일정 때문에 과제 제출을 포기하겠다고. 이러다 글도 여행도 다 망칠 것 같다고. 그제야 마음이 후련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의 댓글이 달렸다.

‘좋은 선택이에요. 소연님 글은 그럼 마지막 수업 시간에 같이 보는 걸로 해요.’

그렇게 내 순서는 뒤로 미뤄졌다. 참 간단하고 명쾌한 해피엔딩이었다. 아아, 이렇게 간단한 거였다니!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긴 했다. 전에 다른 수업을 들을 때도 그랬다. 토요일 저녁 6시라는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는 밤을 새우고 약속도 대충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서 글을 썼다. 그렇게 마감 기한을 간신히 맞췄는데, 다른 분이 간단히 ‘일정이 있어서 내일 올릴게요~’ 하셔서 벙찐 적이 있었다. 맞다. 그래도 되는 거였다. 이게 무슨 공식대회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직장인 취미수업인데.

또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회사에서 매일같이 반복되던 일이었다. 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꾸역꾸역 나를 갈아서 해내는 일. 어쩌다가 결국 못할 상황이 되었을 때 사실 알고 보면 더 여유가 있었던 일. 무조건 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없고 충분히 사정이 생길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어디까지가 충분히 양해를 구해도 되는 상황인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그냥 말없이 해내기를 선택했던 순간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못하겠다는 말을 그냥 내뱉을 수 있었는데, 그걸 해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몰아세우는 앞잡이였다. 혹시 내가 꺼낸 못하겠다는 말이 그걸 듣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까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돌아보니까 비로소 보인다. 내 행동과 판단의 기준에는 나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이 우선시 된 적이 많았다는 것을. 막상 그들은 내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했을 때 흔쾌히 쉬라고 말해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할 수 있는 사람인 나도, 대체 나한테는 왜 그렇게 야박했을까. 세상은 늘 내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나한테 관대했는데, 나는 뭘 그리 겁냈을까. 왜 그리 미움받는 게 무서웠을까.

자유롭게 여행하며 떠오르는 질문들 중에 어떤 것들은 유독 아프고 두렵다. 그건 그 질문이 내가 풀어야 할 문제에 근접했다는 걸 의미다. 그럴수록 더더욱 파헤치고 소독해 내는 게 이 시기 동안 내가 해야 할 일다. 마리 하나를 찾았다.

써지지도 않는 글 대신 서핑을 택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실컷 파도와 씨름하고 돌아와서 모래를 씻어낸 뒤, 나는 깊은 낮잠에 빠졌다. 그리고 느지막이 일어나서 석양을 보기 위해 해변을 향해 걸었다. 그간의 부담을 비워내서인지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그런 나 자신을 아차리자, 왠지 울고 싶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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