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
겪어봐도, 모르는 것
6년 만에 발리를 방문하면서, 이따금 6년 전에 함께 발리에 왔던 친구를 떠올린다. 우리가 함께 발리로 떠나게 된 것은 그때 나는 입사를 앞두고 있는 졸업예정자였고, 그 친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진로를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둘 다 시간이 많았다.
서로의 공백기를 알게 된 것은 그 친구가 졸업하고 갑자기 내가 살던 대학동 고시촌으로 이사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친구인 우리는 대학생이 되어 상경하고는 1년에 두어 번 보는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 대뜸 내 이웃사촌이 되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아니 이 후미진 변두리에 왜…? 너 고시 준비해? 그렇게 묻는 나한테 그 친구는 그냥 자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적당히 방값 싼 곳을 찾아보니 여기가 적당했다고. 여전히 내 머릿속엔 물음표들이 있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이번에 발리에 오면서 그 친구한테 연락했다. 그때 너와 함께 해서 너무 좋았던 발리를 이번에 나 혼자 오게 되었다고. 네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하면서, 그때 네가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했듯이 이번엔 내가 그런 마음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그동안 많이 맘고생 했겠다...’ 그 글자를 보는데 마음이 찡했다. 그 친구는 6년 전의 본인을 떠올리면서 한 말일테니까.
그때의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과 단절되고 싶어서 서울 낯선 지역에 고시원을 잡고 머무는 그 심정을. 딱히 그 친구를 신경 써주지도 않았다. 그때 그 친구한테는 내가 물리적으로 제일 가까운 친구였는데 말이다. 그냥 같이 PC방 가서 오버워치하고, 회사 면접 보고와서 회사 욕하고. 그럴 수 있는 편한 친구가 주변에 있어서 너무 좋다. 지극히 내 위주였던 생각.
이제야 그때의 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헤아려보게 된다고, 그 시기에 내가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하다는 내 말에, 그 친구는 잠을 너무 많이 자서 못 깨어날까봐 무섭다는 생각을 하곤 했노라고, 이제야 지나간 본인의 그 시기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때는 내게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이제야 내가 그 말을 들어줄 사람이 되기라도 한듯. 이제야.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겪어봐도 모른다. 쉽게 내뱉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말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 또 깨닫는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이기적이었는지. 나는 또 나를 통해서야 타인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