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무게를 처음 체감한 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잊혀진 것들

by 조이풀

2014년 말, 첫 회사에 입사했다.


지방의 중소 규모 설계사무소였지만, 그 지역에서는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적어도 그 도시 안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건축설계사무소였다. 첫 직장으로서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들어가며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설계가 아니라 월급의 무게였다.



월급은 숫자였지만, 그 숫자는 삶의 형태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까지의 시간은 규칙적이었다. 수업은 정해져 있었고, 지각과 결석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선택권은 없었지만 하루의 흐름은 늘 같았다.


대학교에 들어가며 처음으로 자유가 생겼다. 새벽까지 작업을 한 날에는 오전 수업을 자체휴강하기도 했다. 책임은 개인의 몫이었지만, 선택지는 존재했다.


회사는 달랐다. 야근을 했다고 해서 다음 날 출근 시간이 늦춰지는 일은 없었다. 밤을 새웠든, 새벽까지 도면을 붙잡고 있었든 출근 시간은 동일했다. 피로는 개인의 문제였고, 결근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회사는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대신, 개인이 모든 사정을 감당하게 했다.


당시 설계사무소에서 야근은 관행이었다. 입사 후 1년 동안 정시에 퇴근한 기억은 거의 없다. 배울 게 많으니 당연하다고들 했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은 설명이 아니라 합리화에 가까웠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잃고 있었다.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은 사람이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은 약속을 미루게 만들었고, 미뤄진 약속은 결국 사라졌다.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 쌓이자 관계도 함께 얇아졌다. 10년 가까이 이 업계에 머문 지금,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회사 사람들, 혹은 비슷한 일을 하는 지인들이다.


사라진 관계들은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유지할 여력이 없어서 사라졌다.


그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인이 된다는 건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정리라기보다는 소모였다.


사람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재능이 없어도 즐기던 취미들도 함께 밀려났다. 취업 전,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겨우 떠올린 것은 몇 가지뿐이었다. 틈틈이 그리던 그림,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찍던 사진,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게임. 회사를 다니기 전의 나는 잘하지 못해도, 결과가 없어도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연차가 쌓이고 휴일이 생겼을 때,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났다.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무엇을 하며 쉬어야 하는지 몰랐다.


휴일을 보내는 방법 자체를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올리다 지쳐 결국 하루 종일 게임만 하다 하루를 끝내는 날도 있었다.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이미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월급이라는 마약으로 회사생활은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용돈이나 알바 생활비를 만들던 시기보다 자극적이었다.


회사에서 도면을 그리는 속도는 빨라졌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몸에 배었다. 회사의 맞춤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밖의 나는 점점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의 나를 소개할 언어가 없었다.


월급은 매달 정확히 들어왔다. 생활은 안정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 안정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얇게 만들었다.


안정은 나를 보호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조금씩 깎아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의 나는 미숙했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회사에 들어온 후의 나는 유능해졌을지 몰라도, 내가 누구인지는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월급의 무게는 단순히 책임의 무게가 아니라,
내가 내려놓아야 했던 삶의 다른 부분들의 총합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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