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발견한 시선의 변화
서울에서 살며 나는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한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창문은 하나의 프레임이 되고, 나는 그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장면만 바라볼 수 있다. 창가에 서 있지 않다면 시야는 더 좁아진다. 정해진 각도 안에서, 나는 움직이는 세상을 바라본다.
창문은 세상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세상을 제한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도시를 걸을 때다.
몇 년 전부터 부주상골증후군을 앓고 있다. 어느덧 6년 정도가 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오래 걷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내가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자주 고개를 돌린다. 누군가에게는 길을 찾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머물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이동이 아니라, 시선을 넓히는 일이다.
걷다 보면 가끔 대로 건너편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같은 건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풍경이 달라진다.
때로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장면은 달라진다. 단지 나의 위치와 각도가 바뀌었을 뿐인데, 사물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건물이 그 순간에는 하나의 흥미로운 피사체가 된다.
사물의 각도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의 배경도 함께 달라진다.
위치가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
나는 이런 순간들이 늘 신기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서 있는 위치만 달라졌을 뿐인데 시야는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건물조차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데, 인생은 어떨까.
요즘 내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일은 꼬일 대로 꼬여 있는 것 같고, 무엇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느낌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때로는 사소한 일 하나에도 괜히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내가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풀리는 일들도 있고, 어떤 일들은 그저 작은 점이 되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기도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커다란 문제처럼 보이고 복잡하게 얽힌 실뭉치처럼 느껴지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어쩌면 언젠가는 겪어야 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차라리 지금 터져서 다행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시간은 분명 버겁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시간 역시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조금씩 바뀌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길 하나만 건너도 건물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시간 역시 우리의 시선을 조금씩 바꾼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위치는 변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본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 한 걸음 물러서자 비로소 보인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조금 다른 자리에서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