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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믿지 않는 내가 믿는 영화의 미래

오늘의 단어: 영화

by 페쉬플랏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집〉 스틸컷


나는 영화 보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고 그건 거의 언제나 불안과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불안은 극의 안팎과 극장이라는 공간에 모두 존재하는데, 이입하고 있는 극 중 인물에게 아주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 나쁜 일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었을지 그 방식에 대한 불안, 두 시간 동안 컴컴한 극장 안에서 남들을 방해하지 않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불안이 주를 이루었다(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불안은 물리적 사고에 대한 걱정보다는 너무 높거나 낮은 실내 온도를 비롯해 불편한 점이 생겨도 마음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에 왔는데, 포항 지진 때 용산 CGV에서 흔들림을 느낀 이후로 사고에 대한 불안도 조금 추가되었다). 〈우리들〉, 〈우리집〉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에는 적어도 앞의 두 불안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집〉 촬영을 이끌었는지 적어둔 감독의 브런치를 보고 그 신뢰는 한층 더 깊어졌다.


빠르고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의 눈에는 윤 감독의 영화가 지루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에 담긴 초등학생 소녀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자세히 읽고 있노라면 한 시간 34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다. 〈우리집〉은 소녀들이 각자의 고민이 짙게 밴 집을 나서 낯선 곳을 향해 가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상자로 집을 만들고 오므라이스를 해 먹는 장면도 좋았지만, 항상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걷던 하나가 동생들과 모험을 떠나서 짜증을 내고 감정을 터뜨리며 애써 만든 상자 집을 밟아 부수는 장면이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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