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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20. 2021

옥탑방의 문제아들

오늘의 단어: 일탈

 나의 첫 일탈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이루어졌다. 당시 살던 부천의 고등학교는 우리 때부터 평준화됐지만 무언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시험을 보기는 봐야 했다. 그리고 중3 학생들 사이에는 시험을 치르기 100일 전 '백일주'란 명목으로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만화책 보는 것 이상의 비행(?)을 저질러 본 적 없는 나였건만 이건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다니던 서너 명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장소 제공과 술 구하기는 내 몫이었다. 두 분야에서 모두 나만 한 적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상가 건물의 4층에 있었는데, 옥상에 작은 다락이 붙어있어 부모님이 갑자기 귀가하신다 해도 들킬 염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노안이었다. 옷만 좀 어른스럽게 입고 립스틱을 바르면 이십 대 초반까지는 거뜬하게 커버가 가능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작은 슈퍼들을 몇 군데 물색해 두었다. 결과는? 첫 시도에 성공. 나는 배우 이나영 씨가 광고하던 '하이주'란 이름의 과일 맥주를 몇 캔 봉지에 담아 나왔고, 우리는 먼지 쌓인 다락의 장판에 앉아 하이주를 마셨다. 안주래봤자 과자 몇 봉지가 전부였을 것이다. 맥주라기보다는 음료수에 가까운 맛이었지만 술을 처음 마시는 우리는 꽤 취했는데, 다행히 부모님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일도, 뒷정리를 잊어 나중에 발각되는 일도 없었다.


 취해서 행패를 부리지만 않으면 술을 마시건 말건 뭐랄 사람 없는 나이가 된 지금도 우리는 종종 그룹 채팅방에서 그날의 일을 이야기한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우리가 여전히 함께 웃을 수 있는, 다소 불량해서 즐거운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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