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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19. 2021

이모, 우리 대화할까?

오늘의 단어: 대화

'대화'라는 단어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먼저 생각난 것은 어려운 어른들과의 대화였다. 직장 상사가 건네는 "이야기 좀 하자." 같은, 일정량의 불편과 두려움을 몰고 오는 말. 다음으로는 잘 통하는 친구와의 긴 대화가 떠올랐다. 몇 마디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면 몇 시간이 훌쩍 흘러 있는 놀랍고도 만족스러운 대화. 하지만 대화를 하고 나서 그 시간과 행위에 대화라는 이름을 붙일 뿐, 구어에서 대화라는 단어가 직접 쓰이는 일은 드물다. 아,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너랑은 대화가 안돼."라고 소통의 불가능성을 드러낼 때는 직접 이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대화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해 나에게 대화 신청을 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홉 살 난 조카다. 때는 작년 여름, 조카는 학교에 갈 수 없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언니가 둘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워 조카와 둘만 남았을 때 조카는 문득 "이모, 우리 대화할까?" 하고 말을 꺼냈다. 언니 없는 틈을 타 내게 대화 신청을 한다는 것도, 어린애가 '대화' 같은 단어를 쓰는 것도 귀여웠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냥, 요즘 생활이나 뭐 그런 거에 대해서, 하며 말끝을 흐린 조카는 가뭄에 콩 나듯 학교에 갈 때의 기분 같은 것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런데 어쩐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는 눈치였고, 나는 성급하게 직구를 던졌다. 요즘 동생 태어나서 조금 힘들어? 잠시 침묵이 흐르고, 조카는 대답했다. 아니, 내 동생인데 뭐. 괜찮아. 언니의 재등장으로 아쉽게도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갑자기 닥친 변화들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을 어린 마음이, 엄마가 아닌 이모에게만 하고 싶은 말이 생긴 나의 첫 조카가 한결 애틋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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