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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18. 2021

웃지 않는 가족의 비애

오늘의 단어: 가족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결혼을 앞둔 언니와 형부, 그리고 나는 셀프 웨딩 촬영을 위해 강원도의 한 펜션을 찾았다. 촬영을 마친 후 저녁을 먹으며 TV 앞에 앉은 우리. 무심코 고른 채널에서 〈개그콘서트〉가 방송되고 있었다.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형부가 말했다. "정말 큰일이다 이 가족..." 언니와 나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동시에 형부를 쳐다봤다. "아니, 개그 프로를 보는데 이렇게 피식 한번 안 하나 싶어서." 우리가 그랬나? 나는 개그콘서트가 웃기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어디 열심히 웃겨봐라, 내가 웃나' 하며 벼르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마 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형부 말이 맞다. 우리끼리 있을 땐 잘 못 느끼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웃음에 박한 편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진지하다. 농담을 오해해 내심 화를 내기도 하고 농담을 가장한 무례에는 당연히 기분이 상한다. 억지로 웃기려는 방송, 영화, 글, 사람 앞에서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냉정한 사람들도 아니다. 오히려 매번 지나치게 진심이어서 자꾸 그렇게 된다. 눈코입이라도 둥글면 무거운 인상이 좀 덜할 텐데 어쩌면 생긴 것도 다들 이렇게 묵직한지.


얼마 전 〈유퀴즈〉에 배우 이종혁 씨의 아들 이준수 군이 출연했다. 키는 훌쩍 컸지만 천진한 표정은 그대로라 왠지 흐뭇했다. 한창 〈아빠 어디가〉에 나오던 시절의 이 부자는 유난히 실없고, 쿨하고 잘 웃었는데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준수에게 한말씀 하시라는 MC들의 요청에 이종혁 씨는 "지금처럼 가족끼리 깔깔 웃으며 지내자."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저 가족은 우리 가족이 절대 가질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일 거라고. 진지한 성격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살려고 노력 중이지만 가끔은 부럽다. '하하'도 아니고 '깔깔' 웃을 수 있는 유쾌한 가족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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