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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쉬플랏 Aug 17. 2021

흑역사 유물의 발굴을 기다리며

오늘의 단어: 사진

 싸이월드가 재개장(?)을 앞두고 있다. 정말 이전의 데이터가 온전하게 복구될지,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정도에서 잠시 화제가 되다 말지 아니면 글로벌 SNS를 앞지르며 화려한 부활을 이뤄낼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BGM을 선곡하고 폴더별로 사진을 올리며 일기까지 쓰던 나는 설렘이 앞선다. 그야말로 내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가 통째로 싸이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보정한 인물 사진이나 빈티지 필터를 씌운 감성 풍경 등 부끄러운 사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흑역사면 좀 어떠랴, 시꺼멓게 불태운 역사도 분명 역사인 것을.


 며칠 전 언니가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왔다. 베르사유에서 찍은 사진이 내게 있냐고.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책을 읽은 조카에게 "엄마랑 이모도 여기 갔었어."라고 말하자 조카는 동공에 지진을 일으키며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고 한다. 어떻게 들어갔어? 프랑스 사람들이 엄마랑 이모가 들어간 거 알아? 조카의 귀여운 호기심을 풀어주고 싶기도 했고, 나도 오랜만에 옛날 사진을 좀 구경하고 싶었다. 그러나 침대 밑 신발 박스까지 바리바리 꺼내 뒤졌는데도 베르사유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스물두 살에 떠난 내 첫 해외여행도 싸이월드에 봉인된 채 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모은다. 팔로워도 좋아요도 적지만 특정 시점의 내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할 땐 꽤 충실한 자료가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인스타그램도 어느 날 갑자기 한 시절을 꿀꺽 삼킨 채 잠수를 타버리는 게 아닐까. 원본 파일을 따로 관리해야 하나? 외장 하드도 플로피 디스크처럼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데이터를 읽을 방법이 사라지면 어쩌지? 역시 가장 오래 남는 건 인화한 사진인가? 추억의 부활을 한 달 남짓 남기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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