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살린 클래식 #122

영화 '파반느',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by 쏘냥이

안녕하세요. 매달 첫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주제로한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오늘은 2026년 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며 영화 순위 1위에 오른 영화이자, 소설을 토대로 탄생한 영화와 그 영화의 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명곡을 만나보겠습니다.



파반느_티저_포스터.jpg 영화 <파반느>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영화 <전국노래자랑>의 연출을 맡았으며 다양한 단편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종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 <파반느 (Pavane)>는 박민규 작가가 2008년에 쓴 소설 『죽은 왕녀를 파반느』를 소재로 마지막을 새롭게 바꿔 완성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개봉을 기념으로 박민규 작가는 17년 후에 세 명의 주인공의 모습을 더한 개정판을 새롭게 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XL.jpg 박민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표지 [출처: 예스24]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인 ‘나’, 이경록 (문상민 분)’은 최고의 영화배우의 숨겨진 아들이라 반반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그리고 삶의 공허함을 지닌 채 백화점의 주차요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이 때 그가 마주한 ‘그녀’, 김미정 (고아성 분)은 백화점의 정직원이지만 못 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한 (변요한 분)까지, 각자의 상처를 품은 채 만난 청춘들은 서로의 상처를 그 깊이와 크기도 모른 채 보듬어 주며 우정과 사랑을 쌓아갑니다.



https://youtu.be/eaWMv7rgqwY?si=E-mwU_d8RhMalvU8

영화 <파반느> 예고편



잘 생긴 남자와 못 생긴 여자의 깊어지는 사랑을 그리는 것은 물론 그들의 벗인 요한의 모습까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남기고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점은 원래 소설의 엔딩과 영화의 엔딩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img1.daumcdn.jpg 영화 <파반느> [출처: 구글 이미지]



원래 소설에서는 ‘나’가 큰 사고가 나서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라진 ‘그녀’는 독일로 떠났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 요한을 추억하며 ‘나’는 독일에 있는 ‘그녀’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맺음이 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녀, 김미정이 독일로 떠나지는 않지만 사라지고, 결국 나, 이경록과 짧은 재회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죽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죠. 그렇게 경록과 미정의 ‘오해’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 되어 그들이 그리는 오로라처럼 빛나게 됩니다.



mb_1772010643474317.jpg 영화 <파반느> 중 경록과 미정 [출처: 넷플릭스]



이 영화에서는 <파반느>란 제목, 그리고 소설 『죽은 왕녀를 파반느』의 제목의 주인공인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외에도 슈베르트의 보리수, 쇼팽의 유작 <녹턴 21번>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미정은 라디오에서 클래식 채널을 즐겨 듣는데, 그 이유가 광고가 없기 때문이라 말하는데요. 그렇게 경록 역시 그 채널을 듣기 시작하며 클래식 음악들이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게 되죠. 그 중 당연히 원작의 제목이기도 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피아노 원곡은 물론 기타 연주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영화 전반에 등장합니다.



https://youtu.be/eGybwV3U9W8?si=5sdPNyoT364jsefK

라벨이 직접 연주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은 ‘스위스 시계 장인’, ‘관현악의 마술사’란 별명답게 완벽주의자이자 기악곡을 작곡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볼레로>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 defunte)>는 그가 파리음악원에서 ‘가브리엘 포레’의 가르침을 받던 1899년, 24세의 나이로 작곡한 피아노 독주를 위한 곡이었습니다. 이 곡은 라벨에게 큰 유명세를 안겨준 작품이지만, 정작 라벨은 딱히 만족하지 못해서 11년 뒤인 1910년에 오케스트라를 위한 관현악 작품으로 새롭게 편곡하여 무대에 올리며 그 아쉬움을 달랬다고 합니다.



Maurice_Ravel_1925.jpg 라벨 [출처: 위키피디아]



‘파반느 (Pavane)’는 느린 2박자의 춤곡으로 16세기부터 귀족들이 줄지어 행진하듯 춤을 추는 우아한 춤을 위한 음악입니다. 당시에는 무도회에서 가장 먼저 추는 춤 중 하나가 바로 이 파반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라벨의 스승인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 Op.50>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이 곡에 대해 라벨은 “옛 스페인 궁전에서 작은 왕녀가 췄을 법한 파반느에 대한 기억”이란 말로 이 작품의 설명을 대신하였습니다.



Edwin_Austin_Abbey_-_A_Pavane.jpg 에드윈 에비가 1897년에 그린 파반느 춤 [출처: 위키피디아]



많은 사람들이 라벨이 벨라스케스의 명화 <시녀들> 속의 왕녀이자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초상>의 주인공인 공주의 작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박민규 작가의 원작 소설의 표지 역시 벨라스케스의 명화 <시녀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https://youtu.be/XYN_5sELsII?si=nI3iR9Nq2ODCXi0J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흐르는 영화 <파반느> 트레일러



마치 스페인 왕궁의 작은 왕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청춘의 작곡가처럼, 영화 <파반느>의 젊은 상처입은 영혼들도 오로라를 꿈꾸며 함께 그 오로라를 보는 꿈을 그리고 있습니다. 잔잔하고 가슴이 아리지만 우리에게 사랑의 힘을 알려주는 영화 <파반느>를 살린 클래식 명곡,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습니다.



https://youtu.be/mB4OgWJZdtE?si=a3a8cmEy_cZ_W4Ld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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