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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Mar 07. 2017

영화를 살린 클래식 #10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빌라 로부스의 칸틸레나

안녕하세요. 매달 2, 4번째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모은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오늘은 판타지아 시리즈가 아닌 다른 작품으로 조금 쉬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작품은 바로 심은하, 한석규 주연의 슬픈 로맨틱 영화의 고전이자 대명사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그 속에 흘러나온 클래식 작품인 빌라 로부스의 "칸틸레나"입니다.



필자가 직접 연주한 비올라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빌라 로부스의 칸틸레나



1998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해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을 만든 클래식 명곡은 바로 브라질의 작곡가 "빌라 로부스 (Hector Villa-Lobos, 1887~1959)"의 작품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Bachianas Brasileiras No.5)"의 1악장 "칸틸레나 (Cantilena-Aria)"입니다.



빌라 로부스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출처: 구글]


빌라 로부스는 1887년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 (Rio de Janeiro)"에서 태어나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도서관 사서였던 아버지 "라울 빌라 로부스 (Raul Villa-Lobos, 1862~1899)"에게서 음악의 기초를 배우고 11세때부터 까페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빌라 로부스는 1905년 브라질 전통 음악을 심도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아마존 깊은 오지로 여행을 떠나며 그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기 위한 긴 여정이 들어갔습니다.


2년간의 오지 생활 끝에 1907년에 리오 데 자네이로로 돌아온 로부스는 국립 음악원에서 체계적인 음악 고웁를 하였고 1913년 피아니스트였던 "루실리아 (Lucilia Guimaraes, 1886~1966)"를 만나 결혼하였으며 그녀의 내조 덕분이었을까요? 2년 후 로부스는 27세의 나이에 그의 음악을 발표하며 작곡가로 데뷔하였습니다.

아마존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그의 독특한 음악 스타일 덕분에 빌라 로부스는 국비로 파리에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되었으며 1930년 귀국한 빌라 로부스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음악 교육자이자 작곡가로 큰 명성을 펼치게 됩니다.



빌라 로부스의 전기 영화 [출처: 구글]



편곡한 작품을 넣느냐 아니냐에 따라 800~2000편의 방대한 작품 활동을 했던 빌라 로부스, 그의 최고의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은 분명 칸틸레나일 것입니다.

바흐의 신봉자였던 로부스는 1930년부터 15년간 바흐의 푸가에서 골격을 이룬 대위법 양식을 이어받아 브라질 민요의 특징과 리듬으로 살을 붙여 "브라질 풍의 바흐"라는 9곡의 모음곡을 완성시켰습니다.

1938년 발표된 모음곡 5번의 첫 악장이자 첫 곡인 "칸틸레나"는 작은 가곡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이며 빌라 로부스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이국적인 느낌으 물씬 풍겨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로 핀란드의 음악 기호학의 권위자 "에로 타라스티 (Eero Tarasti, 1938~)"는 이 작품에 "블랙 박스"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에로 타라스티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칸틸레나는 소프라노와 6대의 첼로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전반부와 후반부에는 가사가 없는 "보컬리제 (Vocalise)"로 작곡되었습니다.

중반부에는 이 작품을 초연했던 브라질의 여류 시인이자 성악가 "루트 코레아 (Ruth Valadares Correa, 1904~1963)"의 시가 읊어집니다.



저녁, 아름답게 꿈꾸는 허공에 투명한 장미빛 구름이 한가로이 떠있네.

달은 달콤하게 땅거미를 수놓고 있네. 꿈꾸듯 어여쁜 화장을 한 아가씨처럼..

온 세상은 하늘과 땅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달의 불평에 모든 새들은 침묵하네.

그리고 바다는 달의 광채만을 반사하고 있네.

부드럽게 빛나는 달은 이제 막 깨어났고,

잔인한 고통은 웃음과 울음 소리조차 잊었네.

저녁, 아름답게 꿈꾸는 허공에 투명한 장미빛 구름이 한가로이 떠있네..



식민지의 고통과 울분이 꾹꾹 눌려지다 못해 초월해버린 듯한 이 곡은 브라질 특유의 열정이 넘쳐 흐르지만 그 속에서도 기괴할 정도로 슬프고도 에로틱한 선율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인의 피에 흐르는 한"과도 묘하게 닮아 있어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심금을 울립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노총각 정원 (한석규 분)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담담히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20살의 풋풋한 주차단속요원 다림 (심은하 분)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30대의 사진사가 아무일 없듯 웃으며 일상을 살아가며 죽음을 기다리던 중 한 젊고 발랄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야속하게만 흘러가는 시간과 가슴 시리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앓이를 하고 그 슬픈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 빌라 로부스의 칸틸레나가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빌라 로부스의 칸틸레나가 흐르며 정원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열하는 장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중]



어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밤, 슬픔을 견디다 못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흐느끼는 정원, 그리고 아들을 달래지도 못하고 문 뒤에서 서성이는 정원의 아버지, 그의 그림자와 흐르는 빗방울과 함께 잔잔히 흘러나오는 첼로와 기타의 칸틸레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잊을 수 없는 가슴 저미는 이 명장면을 완성시킨 것은 바로 빌라 로부스의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중 "칸틸레나" 아니었을까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그 이질감 넘치는 제목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브라질 작곡가의 클래식 음악과 한국 로맨틱 영화의 만남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성공만큼이나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감독의 한 수로 완성된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일 것입니다.



*다른 칼럼들과 연주 일정, 레슨 등은 www.soipark.net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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