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 바흐 칸타타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
예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이 리마스터링되며 영화관에서 재개봉이 되고 있는 요즘, 화양연화, 해피투게더에 이어 재개봉한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은 세계적인 거장인 홍콩 감독 '왕가위 (Wong Kar Wai, 1958-)'의 대표적인 영화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 감각적인 영상미로 우리 나라에서도 홍콩 여행 붐이 불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명작인 '중경삼림'에 클래식 음악이 등장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대도시 '충칭 (ChungKing, 중경)'의 이름을 딴 홍콩의 랜드마크 중경 맨션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2개의 사랑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동방불패', '동사서독', '백발마녀전', '폴리스 스토리'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은퇴한 세계적인 홍콩 배우 '임청하 (Brigitte Lin, 1954-)'의 은퇴 전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영화 '중경삼림'에서 임청하는 첫번째 에피소드 속 마약밀매업자로 등장합니다. 임청하의 상대역으로는 영화 '타락천사', '친니친니', '적벽대전' 등으로 낯이 익은 대만계 일본 배우 '금성무 (다케시 가네시로, Takeshi Ganeshiro)'가 맡고 있습니다.
금성무는 '223 경관/하지무'를 맡고 있습니다. 하지무는 4월 1일 만우절에 여자친구 '메이'에게 버림받고 한달간 그녀를 기다리기로 하고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구입하고 있습니다. 금발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고 레인코트를 입은 마약밀매상은 인도인들을 이용하여 마약밀반출을 시도하지만 전애인이었던 마약밀매조직의 두목에게 배신을 당하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4월 30일에서 5월 1일로 넘어가는 저녁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경찰과 마약밀매상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적벽대전, 색계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홍콩의 대표적인 배우이자 왕가위 감독의 뮤즈 '양조위 (Tony Leung, 1962-)'는 또다른 경찰 '663 경관'으로 두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합니다.
스튜어디스인 여자친구의 저녁을 사주러 매일 스낵바에 들리는 663 경관, 어느날 스낵바에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 '페이'는 663 경관에게 반하고, 이 시기와 맞물려 663 경관은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페이 역은 중국의 가수이자 배우 '왕페이 (Shirley Faye Wong, 1969-)'가 맡고 있으며, 유명한 게임 '파이널 판타지 8'의 주제곡 '아이즈 온 미 (Eyes on me)'를 불러 유명한 그녀는 중경삼림의 주제가 '몽중인 (Dream lover)'를 부르며 가수로서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중화권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감각적인 영화 '중경삼림'은 특히 OST가 현재까지도 많이 회자되곤 하는데요. 영국의 배우 '크랜베리스 (The Cranberries)'의 '드림 (Dream)'을 중국어로 번안해 왕페이가 부른 '몽중인'을 비롯하여 미국의 팝그룹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and the Papas)'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California Dreamin')'이 대표적인 노래들입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는 아주 짧게 잠깐, 하지만 그 등장 이유를 알고 나면 매우 인상적인 클래식 작품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첫번째 이야기에서 마약밀매상이 두목의 명령으로 자신을 배신한 인도인들을 찾기 위해 지인의 딸을 납치해 디저트 가게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에 등장하는 배경 음악입니다. 이 곡은 들으면 모두가 그 즉시 멜로디를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인 바흐의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 (Jesus bleibet meine Freude)'입니다.
'칸타타 (Cantata)'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 (Cantare, 칸타레)'가 어원인 가사가 있는 바로크 시대의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성악곡으로, 종교적인 내용의 '교회 칸타타'와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세속 칸타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무려 200곡이 넘는 교회 칸타타와 16곡의 세속 칸타타를 작곡하였는데, 그가 1716년 작곡한 칸타타가 바로 147번 '마음과 입, 행동 그리고 삶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입니다.
독일의 시인 '잘로모 프랑크 (Salomo Franck, 1659-1725)'의 시에 곡을 붙인 이 칸타타는 바흐가 1723년 더욱 확장시킨 버전으로 편곡하였으며 이 편곡된 버전이 현재까지도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각각 6개와 4개, 총 10개의 곡으로 이뤄진 칸타타 147번 '마음과 입, 행동 그리고 삶'은 합창과 아리아, 레치타티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1부 마지막이자 6번째 곡과 2부 마지막이며 10번째 곡이기도 한 곡이 바로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 (Jesus bleibet meine Freude)'입니다.
찬송가 '예수는 인류의 소망'으로도 잘 알려진 이 곡은 바흐의 칸타타와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곡들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할 수 있으며 영화 '아일랜드', '마이너리티 리포트', '오펀 블랙', '브루클린', 드라마 '다운타운 애비', '데어데빌', '브루클린 나인나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심슨 가족' 등 많은 미디어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Jesus bleibet meine Freude
Meines Herzens Trost und Saft
Jesus wehret allem Leide,
Er ist meines Lebens Kraft,
Meinert Augen Lust und Sonne
Meiner Seele Schatz und Wonne;
Darum lass ich Jesu nicht
aus dem Herzen und Gesicht.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
내 마음의 본질이며 희망이십니다.
그는 모든 시련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내 생명의 힘이 되시며
나의 두 눈에는 기쁨이자 태양이 되시고
나의 영혼에는 보물이며 찬미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마음과 눈에서
주를 멀리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도인의 딸을 납치한 마약밀매상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녀도 사랑을 했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희망이 보여지는 장면이 바로 이 디저트 가게 장면인데요. 이 때 배경 음악으로 등장하는 바흐의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가 바로 그녀의 선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영화 '중경삼림'에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배경 음악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알고 나면 왕가위 감독의 깊은 심중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살린 클래식'의 66번째 곡인 바흐의 '주는 나의 기쁨이시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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