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 브람스 6개의 피아노 소품 중 '인터메쪼'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와호 장룡 등으로 아시아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그리고 헐리우드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대만 출신의 감독 '이안 (Li An, 1954-)'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2007년에 개봉 영화 '색, 계 (Lust, Caution)'는 개봉과 동시에 파격적인 노출 신 등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입니다.
중경삼림,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무간도 등으로 유명한 홍콩 배우 '양조위 (Tony Leung Chiu-Wai, 1962-)'가 남자 주인고을 맡으며 주목을 받은 영화 '색, 계'는 한국 감독인 김태용 감독과 결혼을 하며 우리에게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은 만추, 블랙코드 등으로 유명한 배우 '탕웨이 (Tang Wei, 1979-)'의 출세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실제로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 사건을 근거로 1979년 중국의 현대 문학을 이끈 소설가 '장 아이링 (Zhang Ailing, 1920-1995)'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2차대전 당시 중국 수도였던 난징이 일본군에게 점령을 당하고 친일파가 정권을 잡았을 때, 고위직에 올라 일본을 부역하던 '딩모춘 (1901-1947)'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비서로 접근한 '정핑루 (1918-1940)'의 실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요. 결국 암살에 실패한 정밍루는 스파이의 정체를 발각당해 총살당하고 맙니다. 딩모춘 역시 중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국가 반역죄로 난징 교도소에서 총살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장 아이링의 소설 '색, 계', 그리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8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시점, 영국에 계신 아버지를 기다리며 홍콩 대학의 연극부에 가입하게 된 '왕자즈 (탕웨이 분)'는 무대 위에서의 자신의 능력, 즉 연기에의 재능과 열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연극부는 사실 연극을 통해 독립운동을 꾀하던 항일 단체였고, 급진파인 리더 '광위민'을 필두로 친일파의 핵심 인물인 정보부 대장 '이 선생/이모청 (양조위 분)'의 암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광위민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던 왕자즈는 이 선생 암살 계획에 동참하게 되고, 자신을 '막 부인'으로 위장하여 이 선생의 아내에게 접근하며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 선생과 막 부인은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지만 애써 자신들의 감정을 외면하고, 이 선생이 갑자기 상하이로 돌아가버리며 계획이 무산됩니다.
1941년, 상하이의 이모 집으로 이주하여 일어 공부를 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왕자즈에게 광위민이 찾아와 다시 한번 '막 부인'이 되어 이 선생의 암살을 돕길 부탁합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재회하게 된 왕자즈/막 부인과 이 선생은 더욱 깊이 사랑에 빠지며 서로를 원하게 됩니다. 결국 막 부인에게 흠뻑 빠져버린 이 선생은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기 위하여 막 부인을 보석상에 보냈고, 막 부인은 다음 날 보석을 찾으러 갈 때가 암살을 하기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광위민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아오고, 이 선생과 함께 보석상으로 가게 된 막 부인은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며 이 선생에게 달아나라고 알려주며 암살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매우 자극적인 영상들로 인하여 오히려 이 영화의 작품성이나 서사가 묻히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던 영화 '색, 계'에서 이 선생과 막 부인의 호감, 서로에의 탐색, 그리고 경계의 묘한 감정 흐름이 돋보이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 장면에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클래식 음악 한 곡이 배경 음악으로 등장하며 이 둘의 감정선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바로 브람스가 말년에 작곡한 작품인 '6개의 피아노 소품' 중 2번째 곡인 '인터메쪼'입니다.
우리에게는 헝가리 무곡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는 119개의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는데요. 그 중 118번째 곡이 바로 브람스가 사망하기 4년 전인 1893년에 작곡한 '6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번호 118번 (6 Klavierstuecke, Op.118)'입니다.
웅장한 교향곡과 다양한 협주곡들을 우리에게 남긴 브람스는 말년에 대작보다는 소품들을 더 많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작품번호 116번부터는 작은 피아노 소품들을 작곡하여 모음곡 형식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이 작품들은 인생의 마지막 황혼을 노을처럼 아름답게 그린 작품들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6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번호 118번은 특히 아름다운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1번 인터메쪼 (Intermezzo in a minor)
2번 인터메쪼 (Intermezzo in A Major)
3번 발라드 (Balldae in g minor)
4번 인터메쪼 (Intermezzo in f minor)
5번 로망스 (Romanze in F Major)
6번 인터메쪼 (Intermezzo in e♭ minor)
그 중 2번 '인터메쪼 (Intermezzo)'의 뜻은 원래 오페라 사이 사이에 연주하는 '막간 곡', '간주곡'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곡은 브람스 말년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기도 하며 부드러운 멜로디와 원숙한 작품 구조가 두드러지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2015년 영화 '어드벤테이저스 (Adventageous)', 1993년 영화 '치팅 하트 (Cheating Hearts)'와 '리썰 캅 (Excessive Force)' 등에도 등장한 브람스의 '6개의 피안노 소품' 중 2번 '인터메쪼'는 영화 '색, 계'에서는 이 선생이 막 부인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작품으로 등장합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서로에의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지만 점차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의 마음을 긴장감 넘치게 표현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인 영화 '색, 계'를 살리는 영화 속 클래식인 브람스의 6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번호 118번 중 2번 인터메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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