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살린 클래식 #27
영화 친절한 금자씨, 1. 비발디 -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
안녕하세요. 매달 2, 4번째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모은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골목길에서 친절해 보이지 않기 위해 붉은 아이셰도우를 바르고 복수를 다짐하는 무표정의 아름다운 여인..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2009년 영국 타임즈 선정 2000~2009년 최고의 영화 100선에 들어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이 영화 속에서는 5개의 클래식 음악이 편곡 등의 과정을 거친 후 영화 곳곳에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삽입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 클래식 명곡 칼럼에서는 27, 28번의 두번의 연재를 통해 영화 "친절한 금자씨" 속에 등장하는 클래식 작품 중 여자 주인공인 금자씨의 내면에 선과 악을 대비적으로 그려주는 인상적인 배경 음악 두 작품에 대해 다뤄보려 하는데요.
영화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그 첫째는 선에서 악으로 돌변한 금자씨의 마음을 잘 표현한 비발디의 칸타타 "그만둬라, 이제 끝나버렸다. (Cessate, Omai cessate)" 중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 (Ah ch'infelice sempre)"이며 두번째는 그녀의 복수와 악이 표출될 때마다 등장하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카프리스 24번입니다.
오늘은 그 중 첫번째로 금자씨의 마음 속의 선한 면이 독기로 물들어버린 것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비발디의 세속 칸타타 "Cessate, Omai cessate, RV. 684 (그만둬라, 이제 끝나버렸다)" 중 아리아 "Ah ch'infelice sempre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이 2005년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를 이은 복수 3부작 영화 중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으로 "산소같은 여자"란 수식어로 유명한 여배우 이영애의 연기 변신이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중한 미모의 "이금자 (이영애)"는 고등학생 때 실수로 아이를 갖게 되었고, 자신이 도움을 청했던 자신의 고등학교 교생 선생님이자 연쇄 유아 유괴 살해범 "백선생 (최민식)"에게 누명을 쓰고 자신의 아이를 빼앗긴 것은 물론, 아이를 볼모로 협박을 당해 백선생의 살인죄를 대신 자백,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13년 반의 시간 동안 교도소에 복역을 한 후 모범수로 출소를 하게 됩니다.
이금자는 그녀가 교도소에 있을 때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동료들의 도움으로 호주로 입양된 자신의 딸을 찾았고, 백선생에게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과 함께 그녀의 방식으로 복수를 합니다.
붉은 아이섀도우의 이금자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다소 잔인한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화려한 색감과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배경 음악, 깔끔한 연출로 속죄의 형태를 지닌 "여성의 복수"를 잘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박찬욱 감독은 조영욱 음악 감독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명인 비발디의 음악을 통해 주인공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려 했는데요. 특히 비발디가 단순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가 아닌, 성직자이기도 하였기에 더욱더 종교적인 색채를 영화 속에 충실하게 스며들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는 "붉은 머리 사제 (Il Prete Rosso)"라는 별명을 지닌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우리에게는 "사계"의 작곡가로 친숙한 음악가입니다.
그는 15세에 신학교에 들어가 23세에 신부 서품을 받았으나 허약한 몸으로 미사를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어, 음악 활동을 통해 그의 신앙심을 표현하여 했고 그 결과 500여곡의 기악 작품, 40여곡의 오페라, 27곡의 세속 칸타타 등 방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비발디 [출처: 구글 이미지]"칸타타 (Cantata)"는 17세기 초에서 18세기 중반까지의 바로크 시기 중 가장 사랑받고 널리 쓰였던 성악곡의 형식으로 가사의 내용에 따라 "교회 칸타타 (Cantata da Chiesa)"와 "세속 칸타타 (Secular Cantata)"로 구분되어집니다.
교회 예배를 위한 곡인 교회 칸타타와 달리 사교 모임이나 행사 등을 위해 쓰여졌던 세속 칸타타는 "실내 칸타타 (Cantata da Camera)"라고도 불렸으며, 단순한 구성의 초기 칸타타와 달리 비발디가 활동하던 후기의 칸타타는 이탈리아 작곡가 "스칼라티 (Alessandro Scarlatti, 1660~1725)"가 정형화시킨 "아리아 (Aria)"와 "레치타티보 (Recitativo)"가 교대로 구성이 되는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오늘의 주인공인 비발디의 2번째 세속 칸타타 작품 "그만둬라 이제 끝났다" 역시 그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1727년에서 1728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4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1악장과 3악장은 레치타티보, 2악장과 4악장은 아리아로 구성된 이 칸타타 중 아리아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는 바로 2악장 "Larghetto- Aria, Sol minore: Ah, Chi'infelice Sempre"이며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Ah, ch'infelice sempre, me vuol dorilla ingrate.
Ah, Sempre piu spietata, Mi stringe a lagrimar..
배은망덕한 도릴라가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
왜 끊임없이 나의 가련한 눈물을 흐르게 하는걸까?
Per me non v'e ristoro, per me non v'e speme.
E il fier martoro e le mie pene, Solo la morte puo consolar..
내 고통을 위한 어떠한 치료제도 없어. 없어.. 어떤 희망도 없어.
내 장렬한 순교와 모든 고통은 오직 죽음으로 사라지게 할 수 있어..
Ah, ch'infelice sempre, me vuol dorilla ingrate.
Ah, Sempre piu spietata, Mi stringe a lagrimar..
배은망덕한 도릴라가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
왜 끊임없이 나의 가련한 눈물을 흐르게 하는걸까?
Per me non v'e ristoro, per me non v'e speme.
E il fier martoro e le mie pene, Solo la morte puo consolar..
내 고통을 위한 어떠한 치료제도 없어. 없지.. 어떤 희망도 없어.
내 장렬한 순교와 모든 고통은 오직 죽음으로 덜어낼 수 있어..
바이올린의 짧은 스타카토와 쳄발로의 아름다운 화성 진행으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는 사랑을 잃고 슬픔에 빠진 주인공이 좌절과 복수심 속에서 독기 가득 부르는 노래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유괴를 당하고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지르지 않은 유아 살인을 시인하고 교도소에서 그 형을 살아야 했던 금자씨, 영화 초반에 그저 어린 날라리 고등학생, 철부지 어린 미혼모였을 뿐인 그녀가 처절하게 복수를 다짐하고 출소와 동시에 찾아갔던 옛 동료.
"왜 이렇게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녀?"란 동료의 질문에 무심한 듯 짧은 대답을 뱉는 금자씨 뒤로 울려퍼지는 이 비발디의 아리아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는 바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잔인한 복수심에 악의 편에 서길 결심하는 그녀의 심경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클래식 명곡이 아닐까요?
금자씨의 짧은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친절하게 보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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