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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Sep 21. 2017

영화를 살린 클래식 #28

영화 친절한 금자씨, 2. 파가니니-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카프리스 24번

안녕하세요. 매달 2, 4번째 주에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모은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오늘 28번째 영화 속 클래식 명곡 칼럼에서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두번째 시간으로,

영화 도입부에 강하게 등장하는 비발디의 칸타타 "그만둬라 이제 끝났다 (Cessate, Omai cessate)" 중 "왜 나의 슬픔 외에는 원치 않을까 (Ah ch'infelice sempre)"와 달리 매우 짧게 몇몇 장면에서만 등장할 뿐이지만 이 영화의 "신스틸러 (Scene Stealer, 명품 조연 등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 주연 못지않게 주목을 받거나 주연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를 뜻하는 용어)" 역할을 하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24 Caprices for Solo Violin, Op.1)" 중 마지막인 "24번 라단조 (No.24 in a minor)"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저번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 "친절한 금자씨"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영화 중 마지막 작품이자 여성의 복수를 속죄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입니다.


선에서 악으로 변해가는 금자씨의 모습을 상징하는 음악이 비발디였다면, 이스라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크 펄만 (Itzhak Perlman, 1966~)"의 연주로 그려지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의 테마는 금자씨가 출소하여 교도소 동료들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금자씨가 유괴 및 살인을 했다고 자백했던 아이의 부모에게 찾아가는 장면 등 5회 정도 짧게 영화에 등장할 뿐이지만, 그 때마다 "복수의 페이지"를 채운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고 있는 복수를 위한, 악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진 "니콜로 파가니니 (Niccolo Paganini, 1782~1840)"가 1802년부터 1817년까지 작곡한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가장 힘든 초절기교의 테크닉 연습곡으로 파가니니가 39세가 되던 1819년 출판된 작품입니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가 연주하는 "슈만 (Robert Schumann, 1819~1896)"이 반주 쓴 버젼의 카프리스 24번 [출처: 유튜브]



망상, 환상, 변덕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카프리치오 (Capriccio)"에서 유래한 이 "카프리스 (Caprice)"는 일정한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형식의 기악곡을 지칭합니다.


파가니니의 최초 작품이기도 한 이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카프리스는 그 연습곡 하나하나가 기교적인 부분만이 아닌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고 있어, 24개의 연습곡 모두 솔로 연주나 앵콜, 각종 콩쿨이나 입학, 졸업 시험의 필수 연주곡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작품인 24번째 연습곡의 테마는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피아노 연습곡",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번호 35",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 후대에 수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편곡되고 많은 이들에게 그 편곡 작품들도 큰 사랑받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작품입니다.



파가니니의 초상 [출처: 위키페디아]



이 24번은 주제 테마와 10도, 중음, 옥타브 등의 바이올린이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교들을 망라한 11개의 변주, 그리고 종지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테마 멜로디만이 나오는 것이 아닌 각종 변주의 부분들이 영화의 장면에 알맞게 짧게 짧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유괴, 살해당한 아동의 부모 중 금자씨가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자백엤던 아동의 부모는 금자씨와 가장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아동의 부모를 찾아가는 금자씨가 사죄의 의미로 손가락을 직접 절단하는 장면에서 이 카프리스 24번의 테마는 등장합니다.

또 금자씨가 백선생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동료들과의 재회 장면에서도 이 테마는 흘러나옵니다.


별 의미없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급작스럽게 나오는 느낌을 주는 파가니니의 테마, 하지만 영화 속을 조금만 더 파헤쳐보면 그 부분들이 금자씨가 한단계 한단계 복수를 위해 가는 길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이 이 음악을 각종 장면 속에 넣을 때 얼마나 치밀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데요.


이는 금자씨의 복수를 직접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금자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의 부인이 교도소 동료였던 경우, 금자씨가 그녀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이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테마가 흐르지 않는 것을 볼 때 더욱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복수를 성공한 것일까요? 알 수 없는 표정의 금자씨 [출처: 영화 "친절한 금자씨" 중]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려졌던 천재 음악가 파가니니, 그리고 영화 "친절한 금자씨" 속에서 악의 화신 처럼 느껴지는 금자씨의 복수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쓰인 파가니니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작품번호 1번 중 24번"은 우아한 여성의 복수를 냉혹하고도 아름답게 장식하려던 박찬욱 감독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적절한 음악이 아니었을까요?


숨은 그림 찾기처럼 곳곳에 숨어있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이 파가니니의 테마를 영화 속에서 찾아보는 것도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즐기는 또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칼럼들과 연주 일정, 레슨 등은 www.soipark.net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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