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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Jul 07. 2022

영화를 살린 클래식 #82

영화 '헤어질 결심', 말러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

안녕하세요. 매달 첫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주제로한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출처: 다음 영화]



'깐느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한명인 박찬욱 감독에게 칸 영화제의 3번째 상을 안겨준 영화 <헤어질 결심>은 영화 <색, 계>와 <만추>에서 그 아름다운 미모를 뛰어넘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지도의 배우로 자리잡은 중국 배우 '탕웨이'와 영화 <괴물>, <이끼>, <최종병기 활>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박해일'이 각각 주인공 '송서래'와 '장해준' 역을 맡은 수사물이자 로맨스 영화입니다.



https://youtu.be/A33AdB4u8GQ

영화 헤어질 결심 예고편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의 인상적인 영화를 연출하며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베를린 국제 영화제, 영국아카데미영화상, LA비평가협회상, 카탈루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수상한 감독입니다.

그는 2003년 작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2009년 작 <박쥐>를 통하여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 <아가씨> 이후 6년만에 완성한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봉준호 감독과 함께 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중 형사 해준과 사망자의 아내 서래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 '장해준'이 산에서 추락한 사망자 사건을 수사하던 중, 사망자의 딸로 착각할 정도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젊고 아름다운 중국인 아내 '송서래'를 취조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형사들과 달리 차분하고 깔끔하며 예의 바른 형사 해준은 남편의 사망 소식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침착한 서래를 의심하지만, 또 동시에 알 수 없는 끌림에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자 등산을 좋아해 영상 채널도 운영하고 있던 서래의 남편은 산을 좋아하지도 않고 고소공포증도 있는 서래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것이 조사 결과 밝혀지며 서래는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됩니다. '이포'라는 작은 해안 마을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내와 주말부부로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는 해준은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서래가 가까이 있을 때는 비로소 잠을 잘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서래의 남편 사건이 자살로 종결되자, 그 전까지 자신의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고 있던 해준은 점차 서래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서로에게 빠져드는 서래와 해준 [출처: 구글 이미지]



영화 <아가씨>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에서 영화 속 장면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그 장면의 미장센을 완성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박찬욱 감독은 말러의 음악을 사랑하는 '말러리안'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드디어 그가 말러의 작품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해 두 주인공의 잔잔하지만 거센 파도나 안개와 같은 감정의 흐름과 사망 사건의 극적인 전개들을 치밀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출처: 위키피디아]



'구스타프 말러 (Gutav Mahler, 1860-1911)'는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20세기 작곡가들 중 가장 심오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음악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비롯한 10개의 교향곡 모두가 그의 생각처럼 '하나의 세계와 같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각각의 교향곡 세계들이 모두 전세계의 크고작은 오케스트라들이 사랑하는 교향곡 작품들이 되어 현재까지 연주되어지고 있습니다.



말러와 부인 알마 쉰들러 [출처: 구글이미지]



말러가 1901년에서 1902년까지 작곡한 '교향곡 5번 (Symphony No.5)'은 그가 특정한 이미지나 스토리를 주제로 한 '표제음악'이 아닌 순수한 음과 음의 조합을 통해 완성되는 '절대음악'으로 이뤄진 4개의 악장의 교향곡으로 작곡하려 구상했던 곡입니다.

그러나 당시 41세였던 말러가 19세 연하의 작곡가이자 작가 '알마 쉰들러 (Alma Margaretha Maria Schindler, 1879-1964)'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며 이 작품은 말러가 알마 쉰들러에게 바치는 연애 편지가 되었습니다.


'오스카 코코슈카', '클림트', '발터 그로피우스'와 같은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알마에게 구애하기 위해 말러는 '아다지에토 (Adagietto)' 악장을 작곡하여 5악장으로 구성된 다섯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였고, 이 아다지에토를 통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러는 아무 부연설명 없이 아다지에토의 악보를 알마에게 보냈고, 역시 뛰어난 작곡가였던 알마는 이 악장에서 말러의 진심을 읽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여 1902년 둘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75YmlDR92UQ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 (Adagietto)'



5악장으로 구성된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는 현악기와 하프만이 연주하는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곡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치는 곡이라 하기에는 말러의 5번 교향곡은  애틋함과 절실함 외에도 고독이나 두려움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내포된 입체적인 곡입니다. 물론 말러가 미래를 내다보진 못했겠지만, 말러 부부의 딸이 병으로 사망한 후 그로피우스와 불륜을 저지르고 말러가 사망한 후엔 그와 재혼까지 한 알마의 삶과 심경을 복합적으로 잘 그려낸 곡이 바로 말러의 교향곡 5번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 1악장 '장송행진곡, 침착한 걸음으로 엄숙하게, 행렬처럼 (Trauermarsch. In gemessenem Schritt, Streng. Wie ein Kondukt)
- 2악장 '폭풍처럼 움직임을 가지고, 가장 격렬하게 (Stuermisch bewegt. Mit froesster Vehemenz)
- 3악장 '스케르초. 힘차게, 빠르지 않게 (Scherzo. Kraeftig, nicht zu schnell)
- 4악장 '아다지에토, 매우 느리게 (Adagietto, Sehr langsam)
- 5악장 '론도-피날레. 알레그로 (Rondo-Finale. Allegro)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역시 두 주인공의 사랑, 어쩌면 욕망과 같은 심경을 복합적인 모습으로 그리고자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를 배경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는 3개의 장면에서 이 곡은 등장합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서래 [출처: 영화 <헤어질 결심>]



암벽 등반을 즐기는 서래의 남편은 자신의 영상채널에서 산을 오르며 "말러 5번을 틀고 등산을 시작하면 4악장이 끝날 때에 정상에 다다릅니다. 그 정상에서 5악장을 감상한 후에 하산하면 완벽하죠"라고 표현합니다. 또 그는 거실에서 혼자 LP를 꺼내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도 말러의 아다지에토는 등장합니다.

그리고 서래의 비밀을 알게 된 해준이 그녀의 행적을 따라 등산하는 장면에서도 아다지에토는 배경에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흐르듯이', '격렬하게', '진심을 담아', '조금 서둘러서'와 같은 말러가 아다지에토에 남긴 지시어처럼 해준과 서래의 감정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와 같이 어긋나고 부서지고 또 휘몰아칩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해준 [출처: 영화 <헤어질 결심>]



해준에게 '미결'로 남아야 완전한 사랑이 될 수 있다 믿는 서래와 자신도 모르는 상에 서래에게 빠져든 감정에 휩쓸려버려 '붕괴'되어 버린 해준의 '비극적인 멜로'를 박찬욱 감독은 섬세하면서도 천재적인 연출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산과 안개, 그리고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바다로 가득 차 긴 여운을 남긴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의 대사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고,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도 있다"란 말처럼 감정의 미묘한 엇갈림과 휘몰아치는 욕망, 그리고 공허함으로 가득찬 고독을 완벽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영화를 살린 클래식, 말러의 교향곡 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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