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 홀스트 <행성> 중 '화성'
지난 시간에 다룬 영화 <프로메테우스 (https://brunch.co.kr/@zoiworld/241)>의 감독이자 영화 <에일리언>, <한니발>, <마션>, <킹덤 오브 헤븐> 등을 연출한 영국의 감독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1937-)’의 대표작이자 무려 46개의 상을 수상한 2000년 개봉 영화가 바로 오늘 다뤄볼 영화인 <글래디에이터 (Gladiator)>입니다. 고대 로마의 웅장함과 액션이 넘쳐나는 이 영화는 러셀 크로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 돋보이며 제73회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의 상을 휩쓸며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작품 이후에 로마를 배경으로 한 전쟁이나 전투 영화, 드라마들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번영하던 로마 제국의 다섯 황제 ‘네르바’, ‘트라야뉴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기를 뜻하는 ‘오현제 (Five good emperors)’ 시기의 끝자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르만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장군 (러셀 크로우 분)’을 총애하는 황제 ‘아우렐리우스 (리처드 해리슨 분)’은 막시무스에게 자신의 권력을 모두 물려줘 로마를 공화정 체제로 돌려 번영을 일으키길 바랍니다. 전쟁 후 가족들과 소박한 삶을 꿈꾸던 막시무스는 황제에게 시간을 달라 요청하고 물러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황태자 ‘콤모두스 (호아킨 피닉스 분)’는 황제 자리를 물려받을 자신이 있음에도 막시무스를 황제로 등극시키려는 아버지에게 분노하여 아버지를 질식사시킵니다. 황제가 자연사했다는 콤모두스의 말을 믿지 않고 그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직감한 막시무스는 콤모두스에게의 충성 서약을 거부합니다. 근위대에게 쫓기며 부상을 입고 우여곡절 끝에 고향집에 돌아온 막시무스는 그러나, 마을이 폐허가 되고 아내와 아들이 목 매달린 채 불에 타고 있는 시체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마지막 힘을 짜내 가족들의 시체를 묻어주고 의식을 잃은 막시무스는 노예 상인에게 발견되어 검투사 양성소로 팔려갑니다. 그렇게 검투사, 글래디에이터 ‘스패냐드’로 다시 태어난 막시무스는 시합에 나가기만 하면 연승을 하며 새 황제가 된 콤모두스에의 복수를 꿈꿉니다.
스패냐드의 명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군중의 눈을 돌리기 위하여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큰 검투사 시합을 준비하는 콤모두스의 뜻에 따라 막시무스는 마침내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군중들 앞에 서게 됩니다. 검투사들을 이끌어 전차부대와 궁수들을 꺾고 승리를 거두게 된 막시무스, 직접 경기장으로 내려온 콤모두스에게 투구를 벗고 자신을 밝히는 것을 거부합니다. 황제가 된 자신의 명을 거부하고 뒤돌아선 노예 검투사 스패냐드에게 분노하는 황제의 앞에서 그는 투구를 벗고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다. 북부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스 군단의 군단장이었으며, 진정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충복이었다. 살해당한 아들의 아버지이며, 살해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나는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이번 생에서 안 된다면 다음 생에라도..”라고 밝힙니다.
콤모두스는 막시무스를 죽이려 하지만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서 마지못하고 그를 살려줍니다.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콤모두스는 막시무스를 죽이기 위하여 계략을 세우고, 복수를 꿈꾸는 막시무스와 콤모두스 중 승자는 결국 누가 될까요?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배경 음악은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인 ‘한스 짐머 (Hans Florian Zimmer, 1957-)’이 맡았습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셉션>, <델마와 루이스>, <미션 임파서블 2>, <다빈치 코드> 등 수많은 영화 음악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하였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초반 게르만족과의 전투신이나 콜로세움 검투사들의 입장과 전투신에 등장하는 ‘결투 (Battle)’ 역시 한스 짐머가 작곡한 곡인데요. 이 곡은 2006년, 영국의 ‘홀스트 재단’으로부터 저작권 소송을 당하게 됩니다. 한스 짐머가 홀스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 (Gustav Theodore Holst, 1874-1934)’는 뛰어난 트롬본 연주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05년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밤의 노래 (A Song of the night, Op.19, No.1)’을 비롯하여 첼로 협주곡 ‘기도 (Invocation, Op.19, No.2)’,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2 Violins, Op.49)’, 비올라를 위한 ‘서정 악장 (Lyric Movement for Viola)’와 같은 협주곡을 작곡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완벽한 바보 (The Perfect fool, Op.39)>, <방황하는 학자 (The Wandering Scholar, Op.50)>, <멧돼지의 머리에서 (At the Boar’s Head, Op.42)>와 같은 오페라를 작곡하였습니다.
홀스트의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그가 40세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관현악 모음곡 <행성 (The Planets)>입니다. 1913년, 점성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홀스트가 영감을 받아 작곡한 <행성>은 7개의 행성을 주제로 한 7곡의 모음곡을 완성합니다.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의 차례인 천문학적인 배열이 아닌 점성술적인 배열로 이뤄진 이 곡은 동일한 이유로 지구도 빠진 7곡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홀스트 <행성> 구성
제1곡 : 화성, 전쟁의 전령 (Mars, the Bringer of war)
제2곡 : 금성, 평화의 전령 (Venus, the Bringer of Peace)
제3곡 :수성, 날개 달린 전령 (Mercury, the Winged Messenger)
제4곡 :목성, 환희의 전령 (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제5곡 : 토성, 과거의 전령 (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제6곡 : 천왕성, 마술사 (Uranus, the Magician)
제7곡 : 해왕성, 신비주의자 (Neptune, the Mystic)
점성술적 배열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을 대입시킨 표제로 구성된 홀스트의 ‘행성’은 각각의 제목과 꼭 닮은 음악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환희의 전령인 목성은 다채롭고 화려한 음악적 표현 덕분에 각종 스포츠 중계의 배경 음악으로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제6곡 천왕성은 '마술사'라는 부제처럼 뒤카의 교향시 '마법사의 제자'의 멜로디가 흐릅니다.
글래디에이터의 배경음악으로도 종종 오해를 받는 첫 번째 곡인 ‘화성’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전쟁의 신이기도 한 ‘마르스 (Mars)’를 이름으로 한 화성답게 웅장하면서도 전쟁 직전의 긴장감이 맴도는 오프닝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리는 영화 음악과 같은 느낌도 주는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표절하여 글래디에이터의 영화음악을 만들었다는 소송은 결국 한스 짐머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났으나, 영화가 개봉되고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의 첫 번째 곡인 ‘화성’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삽입이 되었다고 알고 있거나, 한스 짐머가 이 작품을 번안하여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이미 나왔으나, 바그너와 같은 서양 음악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온 한스 짐머의 곡이 홀스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는지의 여부는 영화 속에서 이 곡을 듣는 우리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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