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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냥이 Jul 16. 2018

알쓸신클-뇌가 섹시해지는 클래식 018

히든 클래시커 (Hidden Classic-er) 1.파데레프스키

바이올리니스트, 비올리스트 겸 칼럼니스트 박소현이 선보이는 브런치 매거진!

클래식이 먼나라 이야기처럼 생각되는 당신!

공연도 가고 싶고, 즐기고도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는 그대!!


'알쓸신클'을 읽다보면 어느새 클래식을 사랑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섹시한 클래식 뇌를 갖기 위한 칼럼

''고나면

''데 많은

''나는

''래식,

오늘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이하거나 독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역사 속의 숨겨진 음악가를 만나는 '히든 클래시커 (Hidden Classic-er)', 그 첫번째 시간으로 폴란드의 초대 수상을 지냈던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파데레프스키가 연주하는 쇼팽의 폴로네이즈 작품번호 53번 '영웅' [출처: 유튜브]



현재 저는 국제 학술 회의 참가 때문에 폴란드의 '포즈난 (Poznan)'이란 도시에 와 있습니다.

우리 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지닌외세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아왔던 폴란드의 역사, 그 중심에 있는 포즈난에서 학술 회의 주최 측이 제공한 워킹 투어를 함께 하던 중 폴란드의 독립과 민주 정부의 시작점에 한 음악가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설명에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쇼팽의 도시이자 수도 바르샤바와 파데레프스키의 도시 포즈난



폴란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주위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정복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프로이센, 제정 러시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이렇게 3개국이 1795년 폴란드를 분할하여 1918년까지 약 200년의 시간 동안 지배하였던 슬픈 역사의 국가입니다.

물론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 시대 (1807-1815)'가 있긴 하지만 온전한 독립의 형태를 지니고 있진 않지요.


1830년, 독립을 위한 혁명 정부를 조직하기도 하였으나 실패하고, 1918년 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드디어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폴란드는 그 후 2차 세계 대전, 공산 정권의 시기를 거쳐, 1990년 드디어 다시 민주화에 성공하며 첫 민선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파데레프스키 [출처: 구글 이미지]



1차 세계 대전 중 파리에 그 근거지를 두었던 폴란드 국민 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하며 국민들의 혼란 속에 민심을 한 곳으로 모은 인물이 바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입니다.


그는 '건반의 애국자'라 불리우는 피아니스트인데요.

1872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배웠으며, 졸업 후 5년간 바르샤바 음악원의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1881년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작곡을, 그 후 다시 피아니스트로의 정진을 위하여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넘어가 폴란드 출신의 유명 피아노 교수였던 '레세티츠키 (Theodor Leschetizky, 1830-1915)'에게 사사를 받았습니다.



파데레프스키가 자신이 작곡한 미뉴엣 작품번호 14번 중 1번을 연주하는 영상 [출처: 유튜브]



그 후 다시 폴란드로 돌아와 1909년부터 바르샤바 음악원의 원장으로 재직하였던 파데레프스키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있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Arthur Rubinstein, 1887-1982)'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 데뷔 이후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음악과 스타성을 부각시키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파데레프스키는 50여년간 미국 내에서만 1500회 이상의 연주회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파데레프스키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넘어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윌슨 (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대통령에게 폴란드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당시 바자 호텔의 모습 [출처: 위키 피디아]



1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을 때,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며 폴란드는 소련의 지배 하에서 계속 안전(?!)을 보장받으며 지낼 것인지 폴란드 정부를 세우며 진정한 독립을 이룰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졌습니다.


포즈난 시의 당시 유명한 호텔 '바자 (Bazar)' 앞의 광장은 우리 나라의 광화문과 같은 역할을 했었는데요.

의견이 분분한 국민들이 모인 바자 앞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파데레프스키는 피아노 연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100가지 말보다 폴란드의 음악을 선택한 그의 깊은 속 뜻과 애국심을 느끼게 된 국민들은 폴란드 공화국을 세우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으며, 파데레프스키는 폴란드 공화국 최초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1918년 폴란드 국민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하고 있는 파데레프스키 [출처: 구글 이미지]



1년간 폴란드 공화국의 수상 자리에 있었던 파데레프스키는 정치적인 이유와 피아니스트로서의 소명 때문에 수상 자리에서 내려와 화려한 연주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수상이었던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 '파데레프스키'는 현재 폴란드에서 쇼팽만큼 사랑받는 음악가이자 애국자로 국민들의 마음 속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여지는 '바자 (Bazar)'의 벽면에 붙어있는 파데레프스키의 기념비



*다른 칼럼들과 연주 일정, 레슨 등은 www.soipark.net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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