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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살린 클래식 #116

음악 영화 이야기 24. 마리아 <5> 엔딩 크레딧 <나부코>

by 쏘냥이

안녕하세요. 매달 첫 주에 영화 속 잊혀지지 않는 클래식 명곡들을 주제로한 '영화를 살린 클래식' 칼럼으로 찾아오는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쏘냥 (박소현)입니다.

오늘은 마리아 칼라스의 전기 영화 <마리아>의 마지막 시간으로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흐르는 합창이 포함된 오페라를 만나보겠습니다.



3oQRG0bwPUqE4N4n8z2kAzr7e40-scaled.jpg 영화 <마리아>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오페라 디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1977)’가 사망하고 그녀를 발견한 하인들이 경찰을 부르고 슬픔에 잠기는 장면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등장해 그 일주일을 그리는 연결선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이 찬란했던 한 송이 꽃과 같은 시대의 소프라노의 마지막을 그린 영화 <마리아>가 끝이 나도 관객들은 그 여운과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잔잔한 합창곡 때문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https://youtu.be/2VejTwFjwVI?si=oJ1Tq4-zAg97DoOm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19세기 찬란했던 이탈리아 오페라 부흥기를 견인한 작곡가라 지금까지 칭송받는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1901)’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리콜레토>, <맥베스>, <돈 카를로스>, <오텔로>, <아이다>, <에르나니>, <아틸라>, <루이자 밀러>, <일 트로바토레>에서 마지막 오페라인 <팔스타프>까지, 작곡한 26개의 오페라가 모두 현재까지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음악가입니다.



Primo_ritratto_boldiniano_di_Verdi.jpg 베르디의 초상 [출처: 위키피디아]



그가 20대 후반인 1842년에 작곡한 초창기 오페라인 <나부코 (Nabucco)>는 ‘느부갓네살 (Nebuchadnezzr, 이탈리아어로 Nabucodonosor, 나부코도노소르)’의 줄임말로 성경에 등장하는 바빌론의 왕의 이름을 따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 ‘느부갓네살 2세’의 이야기와 프랑스의 극작가 ‘오귀스트 부르주아 (August Anicet-Bourgeois, 1806-1871)’와 ‘프란시스 코르누 (Francis Cornu, 1794-1848)’의 1836년 연극 <나부코도노소르 (Nabucodonosor)>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 <나부코도노소르>는 같은 해였던 1836년에 ‘안토니오 코르테세 (Antonio Cortese, 1810-1867)’에 의하여 발레로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B_Urgell_209dét.jpg 10세기에 그려진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느부갓네살과 바빌론 군대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이탈리아 극작가 ‘테미스토클레 솔레라 (Temistocle Solera, 1815-1878)’가 쓴 오페라 대본으로 완성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는 4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자신의 첫 두 오페라인 <오베르토>와 <하루만의 임금님>이 처참한 실패로 다시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으려 했던 베르디에게 운명과도 같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X-KcD5fzxOk?si=FspVrVEQig8NFKHv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는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히브리 대제사장 자카리아는 나부코의 딸 페네나가 인질이 되어 있으니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백성들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히브리 왕의 조카인 이즈마엘레는 자신이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었을 때 구해준 페네나와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든 그녀를 구해줄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나부코의 큰딸이자 페네나의 언니인 아비가일레는 이즈마엘레를 사랑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운 아비가일레는 이즈마엘레에게 자신의 사람이 된다면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말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이즈마엘레는 바빌로니아에 대한 분노로 페네나를 죽이려던 자카리아의 손에서 페네나를 구합니다.



1280px-Flickr_-_Government_Press_Office_(GPO)_-_VERDI'S_-_NABUCCO.jpg 나부코 1막 중 [출처: 위키피디아]



자신이 나부코와 노예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동생 페네나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비가일레는 분노에 사로잡히고 바빌론의 제사장과 함께 손을 잡고 계략을 꾸밉니다. 바로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유대인 인질을 풀어주려는 페네나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유대인 정벌을 나선 나부코가 이스라엘의 신을 비웃으며 성전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이 신이 되었으니 자신을 숭배하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갑자기 떨어진 번개에 맞아 쓰러집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나부코의 머리에서 떨어진 왕관을 아비가일레가 자신의 머리에 쓰게 됩니다.



Nabucco_poster.jpg 나부코 초연 포스터 [출처: 위키피디아]



아비가일레는 정신이 나간 나부코에게 유대인 인질들을 모두 죽이라는 서류에 사인을 하게 만듭니다. 여기에는 사랑하는 이즈마엘레를 위하여 히브리교로 개종한 페네나도 속하였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나부코가 페네나의 목숨을 구해달라 사정하지만, 아비가엘레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쓰여진 서류를 찢고 나부코를 가둡니다. 페네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다시 이성을 되찾은 나부코는 이스라엘의 신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왕좌를 되찾게 됩니다. 그렇게 나부코는 페네나를 비롯한 히브리의 노예들을 구하고, 바빌론의 신들의 동상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부코는 위대한 신을 찬양하고 독약을 마신 아비가일레는 페네나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말하며 세상을 떠납니다.



1100520228_PREVIEW.jpg 오페라 <나부코>에서 아비가일레 역할을 맡았었던 마리아 칼라스의 모습 [출처: Crows Auction Gallery]



오페라 <나부코>의 작곡을 의뢰받은 베르디가 집의 탁자에 이 작품의 대본을 집어 던졌을 때 펼쳐진 페이지의 문구가 바로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내 상념이여 (Va, pensiero, sull’ali dorate)’로 알려져 있으며, 이 문구를 시작으로 완성된 합창곡이 바로 3막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입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의 이 합창은 이탈리아에서는 국민 노래라 불릴 정도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https://youtu.be/MBYmhYxEvUM?si=5-ZB_G_EYO-mAesk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가라, 내 상념이여'



Va, pensiero, sull’ali dorate
Va, ti posa sui clivi, sui coli,
Ove olezzano tepide e molli
L’aure dolci del suolo natal!

날아가라, 내 상념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향기에 찬 우리 조국의
비탈과 언덕으로 날아가 쉬어라

Del Giordano le rive salute,
Di Sionne le torri atterrated.
Oh, mia patria si bella e perduta!
Oh, membranza si cara e fatal!

요르단의 큰 강둑과
시온의 무너진 탑들에 참배하라
오, 너무나 사랑하는 빼앗긴 조국이여!
오, 절망에 찬 소중한 추억이여!

Arpa d’or dei fatidici vati,
Perche muta dal salice pendi?
Le memorie nel petto raccendi,
Ci favella del tempo che fu!

예언자의 금색 하프여!
왜 그대는 침묵만 하고 있는가?
우리 가슴 속의 기억에 불을 다시 붙이고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 해주오!

O simile di Solima ai fati
Traggi un suono di crudo lament,
O t'ispiri il Signore un concento
Che ne infonda al patire virtu!

예루살렘의 잔인한 운명처럼
쓰라린 비탄의 시를 노래 부르자
인내할 힘을 주는 노래로
주님이 너에게 용기를 주시리라!



좌절에 휩싸였던 베르디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준 곡이자, 지금은 하늘에서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르고 있을 마리아 칼라스를 그리며 그녀의 마지막을 그린 영화 <마리아>의 엔딩 크레딧은 이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기도하는 마음이 담긴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가장 유명한 곡인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N1fICW_87Js?si=IcuUYDIuZeieKkg1

영화 <마리아> 속 아리아들과 실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아리아들을 비교하는 영상



진한 여운을 안겨준 영화 <마리아> 시리즈를 끝내고, 다음 시간에는 더욱 재미있는 영화에 등장하는 클래식 명곡들을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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