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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Dec 18. 2019

지극히 평범한 페미니즘

『비커밍(미셸 오바마)』,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 너 무슨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페미니스트 그런 거 같다'


얼마 전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에는  듣고 웃고 넘겼지만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비커밍 (Becoming), 미셸 오바마 (Michelle Obama)』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의 8년간의 임기가 끝나고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비커밍(비커밍)이 출간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에는 큰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는데 최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참 멋진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마치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 그 목표점에 도달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 넓은 세계에서 유색인종으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다니는 사회인으로, 한 사람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로 그 삶의 순간마다 스스로를 놓지 않고 붙들고 살아가는 그 모습이 내가 원하는 그 지점이었다.


그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회적 역할이 생기고 다양한 이름이 주어질 때마다 그녀의 생각과 고민을 들여다보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입에 올리지 않은 사실은, 그가 그냥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가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 투표에 늦지 않게 스플링 필드에 갈 수 있었다. 아픈 딸과 안절부절못하는 아내를 태평양 너머에 남겨두고서 동료들에게 합류할 수 있었다. 그것도 가능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그 선택지를 내가 먼저 제안함으로써 희생을 자처할 마음일랑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면 여자의 희생이 불가결한 요소처럼, 당연하고 멋진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인 통념일 수도 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와 남편이 일로 인해 아픈 딸을 뒤로하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희생을 자처하지 않았다. 그 순간 자신이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나에게 이러한 상황이 주어졌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에 잠기면서 오래전 읽었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의 내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김지영 씨는 정대현 씨의 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데에 비하면 남편이 열거한 것들은 너무 사소하게 느껴졌다.
"그렇겠네. 오빠도 힘들겠다. 근데 나 오빠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건 아니야. 재밌고 좋아서 다녀. 일도, 돈 버는 것도" 안 그러려고 했는데 억울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자의 희생은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서 마치 고맙고 미안하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연봉이 높은 남편보다는 여자가 일을 그만둬야 하고 일을 나가야 하는 아빠 대신 밤마다 밤잠 설치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동일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


그런 부분에 있어 나는 같은 제목으로 최근 개봉한 ' 82년생 김지영' 영화에 나왔던 한 장면이 기억에 스몄다. 아내 대신 육아 휴직을 쓴다는 아들의 말에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하며 전화를 걸어온 사부인께 했던 말이었다. '우리 지영이도 공부시킬 만큼 시켰고 똑같이 대학 나와 회사 다니는데 뭐가 아쉬워서 지영이만 집에 있어야 하냐'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이란 여자가 최고라거나 남자는 나쁜 놈이라거나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남들만큼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이 자리를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내려놓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것이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한 희생은 부모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같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혼 주의자라거나 딩크족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잘 사는 게 꿈이다. 하지만 그 속의 내게 주어진 역할에서 나를 잃고 싶지 않다.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미래를 내가 다 알 수 없기에 나도 어쩌면 똑같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다들 결혼하기 전에는 그러한 생각을 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비커밍 (Becoming)』에서 보이는 미셀 오바마의 삶의 모습이 더욱 마음에 담겼다.


샤샤는 내 삶의 엄연한 요소였기에 - 귀엽고, 옹알이하고, 무시할 수 없는 - 나는 아이를 그대로 논의 석상에 올려두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게는 이 아이도 딸려 있죠. 나는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미셸 오바마와 그녀의 두 딸


그녀는 퍼스트레이디라는 큰 역할 속에서도 자신을 감추기보다는 그 자리에 맞게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임이 아님을 그녀는 삶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흔들릴 때도 있었고, 지나와서 생각해 보니 부족한 점도 있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 지만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 모른다면서 이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웃길지도 모르겠다. 엉뚱한 곳에 페미니즘이라는 간판을 달지 마라고 말한다면 과감히 그 단어를 뗄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셸 오바마는 퍼스트레이디로 총 3번 <보그>의 표지모델이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는 말보다 내가 입는 옷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중략) 그런 일을 겪으면 맥이 좀 빠졌지만, 비록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황일지라도 이 속에서 내게 주어진 힘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내가 입은 옷이 궁금해서 잡지를 들춰본다면, 그 기회에 내 옆에 선 군인의 배우자도 보고 아동 건강에 관해 내가 한 말도 읽게 될 것이었다. 버락이 당선된 직후 <보그>가 내게 표지 모델을 제한했을 때도 그랬다. (중략) 언제든 유색인종 여성이 잡지 표지에 나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회도 인생도 평등하지 못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인정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퍼스트레이디라는 이유로 입는 옷 하나하나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것은 여성차별이야' 하고 불평으로 끝나버렸다면 그녀에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차별의 시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활용했다. 사회가 여성의 옷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었다.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성소수자 차별 인종 차별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이 삶을 바쳐 희생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 방법에 있어서는 논란이 있고, 그 본질이 흐려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묶어 '페미니즘'을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스트레이디의 힘이란 희한하다. 페스트레이디라는 역할만큼이나 부드러우면서도 막연하다. 하지만 나는 차츰 그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익혔다. 내게 행정상의 권한은 없다. (중략) 전통이 내게 요구하는 역할은 말하자면 부드러운 빛을 내는 것이다. (중략) 하지만 그 빛을 세심하게만 활용한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나의 이 작은 삶에서 다가오는 페미니즘이란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삶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페미니즘 그것은 나를 바꾸는 작은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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