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e Park Nov 23. 2021

매너리즘 속의 새로움을 발견할 때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추리소설에 흠뻑 빠져있었던 시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무수한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다작 때문에도 있겠지만,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마치 하나의 새로운 장르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추리소설로 먼저 알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추리소설 작가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남아있다. 그렇기에 그의 단편 소설집인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책 제목이 '살인사건'임에도 그의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다가온 이유는 단편 소설집으로 책을 다 읽고 나면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에서 작가는 '살인사건'의 포인트보다는 '추리소설가'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건 새롭다!'라고 느낀 적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 경험을 먼저 꺼내보자면 나에게 항상 추리소설 작가로 인식되었던 그의 이미지를 바꾼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책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은 추리소설이 아닌 이야기로 만나는 작가가 낯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장르의 이야기에서도 추리소설 작가의 치밀함과 세밀함이 묻어 나왔다. 짧게 줄거리를 이야기해보자면, 제목에 나오는 나미야 잡화점에 우연히 들어갔던 도둑 3인조가 그 공간에서 편지라는 매개체로 시간여행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여행은 신선한 소재이면서도 너무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는 소재이다 보니 조금만 뻔한 내용이어도 소설 전체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양날의 검같은 소재이다. 


그 뻔함 속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유의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소설 전체의 치밀한 연결점을 잘 보여주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은 소설에 빠져 읽다 보면 느끼지 못하다가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전체적인 그림이 다시 그려지면서 아! 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올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러한 느낌이 똑같이 들었다. 다른 시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이 모이고 모여 현재의 시간에 들어오고 그 하나의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묶여 시간의 흐름을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책 제목만 보고 골랐기에 단편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단편집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책을 고르기 전에 단편집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고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새로운 히가시노 게이고를 또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추리소설가'에 더 집중하고 있다. 살인사건이 마치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추리소설가'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를 대입하게 된다. 


미디어가 장악해버린 이 시대에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예전과 같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시대에서 작가들의 현실적인 모습이 첫 번째 단편 소설에서부터 드러난다. <세금 대책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붙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블랙 코미디의 책 버전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는 블랙 코미디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의 내가 아는 블랙 코미디는 그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꼬집는다.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모습으로 그 대상을 흉내를 낸다. 개그맨들이 정치인들을 흉내 낸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그 풍자의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스스로의 경험담에 의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작가 세계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지만 자신 스스로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자신을 대상으로 삼다 보면 당연한 방어기제가 생길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러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치 소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몇 가지의 이야기에서는 작가 그리고 출판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 대책 살인사건>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는 짧게 말하자면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이용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가 단순히 작가의 독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첫 번째 이야기를 포함해서 <이과계 살인사건>, <독서 기계 살인사건> 등 다양한 방법과 소재를 사용해서 출판업계와 작가 시장의 문제점과 이슈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하지만 그것이 불쾌하거나 눈살이 찌푸려진다기보다는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다양한 장르의 많은 책들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골라 읽기도 가능하다. 첫 번째 봤던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장르의 책을 다시 한번 펴보길 바란다. 내가 그러했듯 또 다른 작가의 모습을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행복, 너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