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첫 시험을 앞두고
이번 주, 드디어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중간고사를 본다.
성적이 박제되어 길이 길이 남는 시험이 시작된 거다.
고등학교 진학은 중 2, 중 3 시험 성적으로 결정되는데, 요즘 학교 시스템 상 아이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첫 시험이 중 2 중간고사이다.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우스갯말이 있고, 사람들과 교류가 없는 나도 그 우스개를 들어봤다.
'성적표를 볼 때 매트리스 위에서 보라'는 것이 그것인데,
이유인즉,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그간 자기 아이의 객관적인 성적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날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거다.
아, 쓰다 보니 같은 친구에게 들었던 또 하나의 우스개가 생각났는데,
'맨날 모여서 공부가 이러쿵, 학원이 저러쿵 하던 엄마들, 성적 나오면 모두 다 사라진다'라는 것도 있었다.
허구한 날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떠들어 대는 엄마들의 아이들이 실상은 잘 못한다는 것일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뜻 말고 다른 뜻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중 2 성적표가 나오는 순간 학교 엄마들이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 말은 참 웃프다.
오죽하면 이런 얘기가 다 있을까.
어쨌든 우리도 은찬이의 학습에 대한 객관적인 위치를 모른다.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거다.
잘하면 얼마나 잘 하는지, 못하면 얼마나 못 하는지, 어떤 것이 부족한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
하다못해 학원의 레벨 테스트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더 그렇다.
그저 그간의 담임 선생님들의 말씀으로 미루어, '잘 하는 편'이라는 (어쩌면 모호한) 위치로만 알고 있다.
초등학교 때 수학 정도는 단원 평가를 보긴 했지만 결과를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아이가 어떤 부분을 틀렸는지 보면 좋을 텐데 말이다.
상담 때 여쭤보니까 시험지를 집으로 보내면 말도 많고 탈도 많다고 했다.
아이를 사교육에 내몰거나, 하다못해 혼 나기라도 할 거 아니냐고 하셨다.
은찬이라도 조금의 정보를 알아오면 짐작이라도 하련만, 정말 놀랍도록 다른 아이의 점수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기가 틀린 개수나 잘 알아오면 다행이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시험이 너무 걱정이 돼요. 내신이 너무너무 걱정이 돼요.'
이 말은 어떤 중학교 1학년 아이가 한 것인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중학교 1학년이 내년의 시험 성적을 저토록 걱정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내신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길래 그게 그토록 걱정일까.
그 걱정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남편과 나는 다행히 교육적인 부분에서 의견이 잘 맞기 때문에,
내신 성적이 중요해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에 성실하게 임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 시험이나 수행에 스트레스 받지는 말아라.
- 어쩌면 수행은 귀찮기만 하고 쓸 데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어른 입장에서 보니까 그 모든 것이 다 필요한 것들이더라. 그런 활동을 해본 것과 안 해본 것의 차이는 있는 거다. 사람은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니까.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도 없고, 네가 할 수 있는 한에서만 하면 된다. 혼자 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엄마, 아빠, 선생님, 친구들에게 얘기해라.
- 지나치게 경쟁하는 마음도 가질 필요 없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라. -혹시 너를 견제하는 라이벌이 있어도, 너는 그럴 필요 없다. 아낌없이 정보와 지식을 나누어라. 혼자만 독차지하려는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그건 너무나 사소한 것이고 지나고 보면 잃는 것이 훨씬 크다.
- 아무리 할 것이 많다고 해도 휴식의 시간을 확보해야 하고, 식사도 잘 해야 하고, 지금처럼 반드시 시간을 내어 운동도 해야 한다. 체력은 정말 중요한 것이니까.
- 주요 과목 모두 A를 받아야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그리되었다면 그 성취감은 평생 간직해도 좋은 것이다. 최선을 다해본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고, 그래서 얻어낸 성취는 기쁘게 간직할 만한 것이다.
- 하지만 성실하게 준비를 했어도 시험을 잘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해도 그게 나쁜 건 아니다. 꼭 좋은 고등학교를 가야 앞으로의 인생이 탄탄한 건 아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결과적으로 더 좋을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 시험 좀 못 봤다고 세상이 끝나는 게 아니다. 너의 앞날에 큰 장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다.
- 네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도달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니까 그 순간과 상황에 맞추어서 최선의 길을 함께 찾으면 된다. 걱정할 것은 없다.
-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하는 것은 너의 본분, 학생으로서의 책임은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다는 아니다
이 문장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가져오는 문장일지 모르지만, 살아갈수록 실감한다.
삶에는 갈래 길이 정말 많다.
이 얘기는 은찬이가 어릴 적부터 정말 많이 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 그것을 택할 수 있는 용기는 있어야 한다고.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는 건 축복이고, 그걸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정말 행복한 것일 테니까.
공부가 유일한 선이고, 그것만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주입받은 아이를 떠올려보라.
얼마나 아찔한가.
이쯤에서 그러는 댁은 공부를 안 시키냐는 질문이 목젖까지 올라왔을 텐데, 당연히 공부를 시킨다.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은찬이에게 가장 적합할지, 가장 효율적일지 항상 고민하고, 은찬이하고도 늘 대화를 나눈다.
좋은 정보를 보면 은찬이와 함께 다시 그 정보를 본다.
전문가의 말을 직접 들어서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선행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여러 번 반복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그런 정보를 직접 듣고 불안해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현재 은찬이는 우리 기준에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 기준이지 세상의 기준은 아니고, 세상의 기준은 우리가 잘은 알지 못해서 '열심'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다.
'열심'에는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이 있는데 상대적인 것도 누구와의 비교 인지에 따라 매우 다르다.
모든 것을 하지 않는 학생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또 이토록 공부를 하지 않아도 시험 기간에만 성실하기만 하면 성과를 내었던 지금 아이들의 부모 세대, 그러니까 나와 남편과 아이를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지금 고3처럼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과, 그처럼 공부해야만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도 그리할 순 없다는 거다.
지금처럼 잠이 모자라지 않도록 할 것이다.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매일 함께 운동하러 나가고, 아이의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부르면서 깔깔거릴 것이다.
댁의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니까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를 못한다면, 그렇다면 더더욱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초등학생 때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건 행운일 수 있다.
(물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매우 속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이미 공부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공부로는 어찌해볼 수 없다는 너무 명확한 증거 아닌가!!
조금 늦게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라도 그걸 알아차렸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면, 얼른 아이의 적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부가 최선最善이 아닌데,
공부를 잘하면 좋은 것, 공부를 못하면 나쁜 것.
공부를 잘하면 좋은 학생, 공부를 못하면 나쁜 학생,
공부를 잘해야 행복의 길, 공부를 못하면 불행의 시작.
이건 너무 이상하다.
왜 모든 애들이 공부를 잘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려서 고통을 당해야 하냐는 거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은 시험 걱정 없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보라고 자유학년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학창시절에 배우는 것들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최소한의 지식이므로,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건 재능 여부에 상관없이 성실하게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대책 없이 놀고 있는 애를 보고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할 일은 아니다.
또는 '너는 공부 재능이 없구나. 그럼 이제부터 공부는 하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꾸나.' 이렇게 판단할 문제도 아니다.
정말 공부 재능이 없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왜 대책 없게 되었는지, 다른 문제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이의 대책 없음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책임감, 성실함 등도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내내 보고 배워 체득한 것들은 무시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성실해야 하는 이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 학생의 본분, 태도의 중요성 등에 대해 말을 해주지도 않고, 오로지 공부만이 살 길인 것처럼 굴거나, 자신은 하지도 못할 그 공부를 몇 바퀴씩 돌리며 시키는 건, 한 마디로 너무 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학원 숙제에 질리게 만들어 놓고, 결국은 학원비 운운하며 죄책감을 갖게 하는 건 심각한 책임 전가 아닐까.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 정말 작은 부분들이 쌓인다는 거다.
내가 알지도 못한, 의도하지도 않은 나의 말 한마디와 눈빛과 태도 같은 것들이 아이의 태도를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태도이다.
어렸을 때 형성되어 평생을 따라다니는 태도.
나는 인생에 가장 영향을 주는 건 '태도' 라고 생각한다.
태도는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그것이 드러난 자세를 말한다.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잘못을 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짜증이 났을 때, 화가 났을 때, 슬플 때, 기쁠 때,
나보다 약한 것을 보았을 때, 나보다 강한 것을 마주했을 때,
불의를 보았을 때, 하기 싫은 것에 직면했을 때, 유혹 거리를 마주쳤을 때,
자신이 마땅해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약속한 것들에 대해....
이 모든 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드러나는 모습이 태도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태도이다.
그러니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나.
아무리 공부 재능이 없다고 해도, 귀찮아서, 더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지겨우니까
그런 이유로 학교 수업에 불성실하다면, 이런 태도는 학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고 과연 나에게 주어진 것을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임할 수 있을까?
반대로 공부 재능을 타고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의 경우도 그 태도에 따라서 나뉜다.
그 한 줌의 잘난 맛에 도취되어 학교 수업을 소홀히 하거나,
선생님, 부모님, 친구에게 예의 없게 군다? 욕을 달고 산다? 다른 사람을 깔아뭉갠다?
이런 태도를 가졌다면 정말 장담컨대 절대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공부에는 아예 재능이 없지만 기본 태도를 갖춘 사람보다 잘 살아갈 수가 없다.
공부 머리가 타고났다면 어쩌다 객관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러 먹은 태도로는 행복에 다다를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밖에 몰라서 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며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는 받아들이면 된다.
대체로 태도가 좋다면 결과는 나쁘기 힘들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본은 보장되어 있다.
그러니 학생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하는 태도, 그런 좋은 태도로 학교생활을 한다고 할 때,
타고난 머리도 좋고, 방법도 좋았고, 전념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추어져 있었다면 좋은 성과를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태도는 좋았지만 여건이 따르지 않아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태도가 나쁘지 않다면, 당장 눈앞의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안타까워한다고 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걱정해야 하는 건 아이의 성적이 아니고 태도이다.
결국 정말 중요한 건, 인생을 얼마나 충만하게 살아가느냐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성적에 달린 것이 아니고, 태도에 달린 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하다.
여전히 거의 매일 은찬이의 태도에 대해 나무라는 일이 생긴다.
이제는 어지간하면 그냥 넘기고 싶어도 태도가 삶에서 너무 중요한 것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아이가 그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의 태도도 함께 돌아본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남편과 나는 오늘도 세 번째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시험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고.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더라도 그걸로 얘기하진 말자고.
아이가 누구보다 학교생활에 성실하다는 것을 아니까.
아이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게 명확하게 보이니까.
그거면 정말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